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윤숙 씨의 맏언니 고(故) 김정숙 씨

타인을 배려하고 인품 온화한 언니…내방가사도 잘 지은 '신사임당'

마이크를 잡은 (김윤숙) 왼쪽 분이 맏언니 고 김정숙 씨. 김윤숙 씨 제공
마이크를 잡은 (김윤숙) 왼쪽 분이 맏언니 고 김정숙 씨. 김윤숙 씨 제공

나의 언니 고(故) 김정숙 씨는 경관이 수려한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에서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딸로서는 맏이다. 일가친척에게 두루 예절이 밝고 언행이 단정해 대·소간에 칭찬이 자자했다. 인품이 온화하고 인자한데다 덕과 지혜를 갖춰 항상 약자 편에 서서 생각하는 측은지심이 타고난 듯했다.

언니는 타인을 배려하고 헌신하며 희생정신이 강해 자신을 위해서는 한없이 아끼고 근검절약했다. 솜씨도 뛰어나 바느질과 뜨개질도 잘해 제부나 시댁 아주버님 조끼를 밤 지새며 짜서 선물했다고 한다. 18세에 연안 이씨 가문 7형제 중 넷째에 출가했는데 시댁 맏형님을 부모 대하듯 하여 우애가 깊고 양가 집안이 두루 화목해 이웃의 부러움을 샀다.

결혼 전에는 친정집 밭에 목화를 많이 심었다. 누에를 치고 물레에서 명주실을 뽑아 명주를 짜서 곱게 물을 들여 다듬이질 방망이 소리가 집안에 가득했고 베틀에 앉아 철컥거리며 모시와 삼베 무명을 짜서 식솔들의 의복을 만들어 어른을 섬겼다. 근면 성실하고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지만 그 고단함이야 이루 형용할 수 없었으리라.

할머니는 인천 최씨 부유한 집에서 시집을 오셨는데 축문이나 제문을 잘 쓰시고 가사를 잘 지으셔서 문경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사셨다. 언니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붓글씨와 내방가사도 잘 지었고 할머니를 성심을 다해 봉양하며 모셨다. 아버지가 딸들에게도 천자문을 가르치어 한문에도 능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윤숙) 바로 오른쪽 분이 맏언니 고 김정숙 씨. 김윤숙 씨 제공
마이크를 잡은 (김윤숙) 바로 오른쪽 분이 맏언니 고 김정숙 씨. 김윤숙 씨 제공

언니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한국의 부모가 그러하듯 자녀의 교육열도 대단했다. 그리 넉넉지 못한 살림을 꾸리며 자녀 셋을 모두 대학에 졸업시키고 큰아들은 LG그룹, 둘째 아들은 대우그룹에 취직했고 양념 같은 딸은 남편의 건축사업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종 질녀도 언니를 닮아 마음이 어질고 아름답다. 내가 언니 애칭을 '신사임당'이라 불렀더니 아주 적절하다며 모두 공감했다.

항상 남의 말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해 용기와 자존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언니한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막내인 나를 일러 '영리하고 똑똑하다'라고 늘 딸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친정은 자수성가한 맏오빠가 제법 규모가 큰 약국과 도매업을 운영해 지방에서는 유지로 손꼽히다 보니 친정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 늘 자녀에게 외가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손아래 질녀 남편에게도 늘 존칭을 썼고 조선시대 양반가 규수의 삶처럼 인의예지에 충실해 감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삶을 살다 간 고결한 언니가 한없이 존경스럽다. 췌장암으로 72세의 짧은 생을 살았으나 문중과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가슴에 쉽게 잊혀 지지 않는 규수로 기억될 것이다. 언니가 지은 내방가사 '화전가' 일부를 소개한다.

'어화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금수강산 삼천리에 슬기로운 아들 딸들/ 명문가족 생장하여 부모님께 교육받고/ 사회에 훈교견문 이름으로 여자유행/ 출가외인 면할손가 손잡고 놀던친우/ 면목이 의희하고 부모형제 정든고향/ 꿈속에만 오락가락 사고구고 봉군자와/ 봉제사 적빈객에 여가없이 골몰하여/ 불출문의 하옵든이 화려한 우리강산/ 꽃피어 봄들었네 강남에서 나온 제비/ 처마끝에 올라앉아 주인찾아 속삭이고/ 화단 위에 온갖 꽃은 울긋불긋 홍순으로/ 춘색을 자랑한다 우리의 여성동포/ 저러한 자연속에 화전놀이 하여보세/ 존구고님 허락받아 삼삼오오 짝을지어/ 앞서거라 뒤서거라 송계동 과수원에/ 꽃놀음 가자서라 도화원을 바라보고/ 일자선을 그렸으니 심신도 쾌활하고/ 의기도 양양하다 먼 산에 아지랑이/ 눈앞에 아물아물 짹짹이는 새소리는/ 소리소리 춘흥이라 나물캐는 저아이들/ 나비춤 놀랠킬라 일보이보 전진하니/ 도화원이 여기로다 사면을 둘러보니/ 홍부갯벌 보리싹이 청청하게 프르렀네' 〈김정숙 '화전가' 전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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