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영화의 명암

서명수 객원논설위원
서명수 객원논설위원

겨울로 접어든 요즈음 극장가에 케케묵은 44년 전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됐다. '서울의 봄'이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으로 이어진 '12·12 사태'가 소재다.

지난해 대선을 앞둔 1~2월 사이 무려 5편의 정치 소재 영화가 개봉된 바 있다. '킹메이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늦봄2020' '나의 촛불'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그것이다. 지난 대선이 0.73%포인트라는 간발의 차로 당락이 결정된 진영 대결이었던 만큼 이 영화들이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선거를 앞두고 개봉한 의도는 뻔하다.

김의성과 주진우가 연출한 '나의 촛불'은 4만2천여 명이 관람했다. DJ의 대권 도전을 다룬 '킹메이커'의 관객도 78만 명에 그쳤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과 '늦봄2020' 역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년 초 DJ를 소재로 한 '길위에 김대중'이 개봉될 예정이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비트'와 '아수라' '감기' 등 그동안 꽤 주목받은 영화를 연출한 중견 감독이다. 그런 그가 '서울의 봄' 개봉 후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역사의 패배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철 지난 586세대에 대한 부채 의식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돈 봉투 사건의 주역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상호, 임종석 등이 대표하는 586세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공짜 권력(?)을 누려 온 그들에 대한 퇴장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그 시대를 반추하는 영화를 제작, 총선을 앞두고 개봉한 것은 정치영화 개봉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수라'는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행적을 빼닮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수라'의 주연배우 황정민과 정우성은 '서울의 봄'에 다시 캐스팅됐다.

선거에 맞춰 개봉한 정치영화는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흥행이 저조했다. '그때 그 사람들'과 '택시운전사' '남영동1985' '1987' 등은 선거와 관계없이 개봉한 영화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진영 논리에 따른 편 가름 심화로 인해 영화마저 정치색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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