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과 경북 북부권을 바꿔놓은 서산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은 당시 이의근 경북도지사마저 "그거 되겠나?"라고 되물을 만큼 난관에 부닥쳐있는 국책사업이었다. 서산에서 영덕까지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수립된 뒤 다른 구간은 이미 개통됐거나 건설이 추진 중이었지만 경북을 통과하는 상주~영덕 구간은 통행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사업이 무산되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두가 자포자기 심정에 빠져있었을 때 분위기를 돌려놓은 사람이 나왔다. 영덕이 고향인 박몽용(71) 화남그룹 회장이었다. 지난 8일 대구 수성구 그의 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댄 박 회장은 당시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SOC가 없으면 지역이 일어서지 못하는데 우리가 먼저 목소리를 높여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지역을 위해 먼저 해주지 않는다"면서 지역 사회의 적극성을 주문했다.
"B/C 분석이라고 하지요. 중앙정부가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서 국책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 고속도로는 B/C가 안나오는건지, 일부러 안나오게 하는 건지 모르지만 장기 표류하고 있었어요. 당시 지역 사회에서는 모두 포기한 상태였죠."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였던 2002년 12월27일, 민족통일협의회 경북도회장 자격으로 그는 연말 기관장 모임에 나갔고 이의근 지사에게 서산과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중앙정부에 경북 최대 현안사업으로 건의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무현 정부의 특성을 감안할 때 서해와 동해를 잇는 균형발전 논리를 동원하면 된다고도 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이 지사님이 '꿈도 꾸지 마라'고 하는 겁니다. 사업성이 안나온다는 거죠.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모임에서도 똑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이 지사께서 '내가 대통령 되도 안된다'라고 또 응수하더군요. 분통이 터졌습니다. 지역 사회가 똘똘 뭉치면 될 것인데 이런 사업도 추진 안하고 맨날 밥만 먹는게 기관장 모임인가 싶었습니다."
박 회장은 의지를 꺾지 않고 평소 친분이 있던 포항 출신 박기환 씨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지방자치비서관으로 발탁되자 그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과 협조해 이 사업 추진을 위한 민관협의체도 박 회장은 만들었다.
"동서를 관통한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 경북 동해안의 어려운 사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더 많은 논리를 만들기 위해 이 고속도로가 유사시 군사작전에도 유용하고 자연재해대비 비상도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론도 가져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뛰고 나름대로 논리도 만드니까 박기환 비서관은 물론, 경북 고령 출신인 김병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이 사업 추진에 호응을 해줬습니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7월 16일 포항공대 지곡회관에서 열린 '대구경북지역 혁신발전 5개년계획 토론회'에 참석, "경북 중북부 및 동해안지역의 발전 잠재력과 상대적 낙후성을 감안할 때 신행정수도를 경유하는 동서축 간선도로가 조기에 건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발언하면서 이 고속도로 사업 추진이 전격 결정됐다.
"감격스러웠죠. 저도 노 대통령 발언 때 함께 자리했는데 노 대통령이 마이크를 쥐더니 '조기 착공' '조기 준공' '이 자리에서 약속' 등의 언급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겁니다. 이의근 지사님도 제게 '하면 된다를 느꼈다. 정말 큰 선물 받았다'는 찬사를 하셨습니다."
상주~영덕구간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 이후 일정대로 착착 진행됐고 2009년 12월 착공돼 2016년 12월말 마침내 개통됐다. 무려 3조원 가까운 국비가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이 지역 사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는 뻥 뚫린 고속도로, 그리고 영덕·울진 등 동해안과 경북 북부권에 관광객이 늘어난 현장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그는 "좋다"라고만 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도지사마저 안된다고 했던 사업이 어떻게 국책사업으로 반영돼 실제 개통까지 이어졌는지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합니다. 그래야 지역을 살찌우고 희망을 남겨주는 SOC사업을 더 늘릴 수 있고 중앙정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논리도 풍성하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제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업 추진을 위해 힘을 써준 당시 지역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과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박기환 비서관 등의 공로를 기리는 기념비나 더 나아가서는 고속도로 개통 기념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야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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