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마음과 마음] 내 마음의 지도를 찾아서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지난 27일 배우 이선균씨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착하고 우직하고 약자를 이해하는 가슴 따뜻한 역할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가 마약 스캔들에 휩싸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생은 매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애쓰며 조금씩 무덤으로 다가가며 오래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것이 죽음인데, 예정에 없던 방법으로 목숨을 버렸다.

비참한 망가진 모습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게 낫다는 중년 남성의 실종 심리 아니겠는가. 화살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겨누었다. 이선균씨가 미래의 자기 마음의 지도를 알아가면서 살았더라면 이런 비통한 일은 없지 않았을까.

연말연시가 되면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이 많다. 내년에는 사업 운이 좋을지, 나이가 꽉 찬 아들이 결혼은 하게 되는지, 온몸이 아픈데 병명은 안나오니 정말 오래 살 수 있는지, 불안해서 점집을 찾는다. 불확실한 세상에 둘러싸여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질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어릴 때는 천둥 치고 무서우면 부모님께 달려가 숨으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숨을 곳도 없고, 불안하면, 나의 두려움을 해결해 줄 부모님 같은 강력한 대상이 필요하고, 나를 보호해주고 답을 주기를 바라는 퇴행 심리가 바로 점을 보는 심리다.

어떤 분들이 점을 많이 보러 다닐까. 첫째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서 걱정하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스스로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점을 보러 간다. 남자를 만나고 있는데 어떤 사람하고 결혼해야 될까. 매일 걱정하고 다음날 또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저울질만 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성공해야 돼. 난 1등 해야 돼. 합격해야 되, 대박 나야 되. 반드시 이상적인 목표를 이루어야만 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일이나 시험은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서 잘 할 수 도 있고 가능성이 낮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실패하면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점을 많이 본다고 한다. 타로 점집을 열었더니 손님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정신과를 오신 점집 사장님의 증언이다.

사실은 젊어서 좋기는 하지만 젊다는 게 얼마나 불안한가. 취직할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정을 하는 용기가 필요한 여정인데, 점집에 가서라도 잘 될거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못 들으면, 그 얘기를 해주는 점술가를 만날 때까지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점을 보는 것도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실존적인 노력인데, 너무 점괘에 의존하거나 잘못된 가짜 뉴스에 빠지거나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 불안을 극복하는 실존적인 노력과 함께 근거 중심의 희망을 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힘든 삶을 견디는가.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의미를 알고 나 자신으로 사는 것, 그리고 지금은 힘들지만 잘 견디고 나아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을 때 살 수 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인 프랑수아즈 돌토 (Francoise Dolto)는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떤 실패나 실수보다도 희망이 없어지는 거다. 사랑이 없어지는 거, 신뢰가 깨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존재에서 가장 중대한 시련이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는 우리 몸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쓴 책이다. 우리 몸은 수많은 세포와 신경, 기관이 조화를 이루며 엄청난 일을 하는 정교한 기계다. 현대과학의 발달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분석하여, 인간게놈지도(genome map)를 완성했다. 그 결과 질병 진단과 치료, 신약 개발 등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유전자 지도를 밝혀내듯이, 내 삶의 마음의 지도를 찾아낸다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우리는 언제 어떻게 살다가 죽게 되는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는 마음의 안내서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시계를 보면서 매일의 삶을 계획하고 달력에 빼곡하게 일정을 기록하면서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듯이, 미래와 삶의 여정을 알 수 있다면, 삶이 쓸데없는 일로 소모되지 않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실수도 하지 않으면서 잠재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고, 부모 탓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가족이나 친구한테 도움을 청한다. 얘기해본들 달라지는 게 있나요. 이렇게 단정하고 혼자 고통을 안고 가는 사람도 있다. 힘들 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해본다.

문제 해결 방식을 함께 찾아가고 더 성숙된 방식으로 해결을 위한 길을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폐렴인지 단순한 감기인지 알기 위해 흉부X선 검사를 하듯이, 심리검사를 통해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많은 정보를 얻는다. 심리검사는 정확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계량화해서 어느 나라에 가든지 검사 결과를 보여주면 어떤 상태인지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외부 환경은 꼬이고 힘들고, 버티고 자신을 위로하지만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을 보면서 인생의 고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나는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외부의 세계는 늘 나를 방해한다고 했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고,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인생이 편하다고 전해준다.

내 마음의 모양도 알아보고, 내 마음의 지도도 찾아가는 것이 미래의 세이프 라이프를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무릎을 탁 치는 통찰의 시 한편을 소개드린다.

인생의 주소

- 문무학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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