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욕망의 ‘집’과 ‘삶의 집’으로 양극화 되어버린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 부동산’ 한현주 작, 이성열 연출 <집집: 하우스 소나타>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대중 정부 시절(1996) 스위스 취리히 FIFA 집행위원회는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발표했다. 정부는 월드컵 성공개최를 위해 주변 정비작업에 속도를 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무허가 주택은 철거되고 정부는 국민주택과 임대주택을 특별분양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3백 55가구가 대상이었다. 21~ 25평 규모의 특별분양아파트와 14~ 17평대 임대 아파트가 공급된다는 계획이었다. 1978년부터 18년간의 쓰레기 악취의 한강 서쪽 난지도는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자연생태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고 격렬한 '아, 대한민국'의 함성은 4강 신화를 만들었다. 20년 뒤, 한국 사회 대표 논객 강준만은 「부동산 약탈국가」(2002, 인물과사상사)를 펴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건설회사 광고 문구를 인용하면서 "아파트가 개인의 품격을 담보하는 시대가 되었다"며 괴물이 되어가는 한국사회의 아파트 공화국을 저격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바람은 한국 사회를 쓰나미처럼 덮쳤다. 악취의 욕망은 영 끌과 빚투로 전이되어 무순위 청약 전쟁의 빈틈을 파고드는 '줍줍'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이처럼 한현주 작, 이성열 연출의 <집집: 하우스 소나타, 이하, 집집>(선돌극장)은 부동산 공화국에서 살아가는 집(아파트)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연극이다. 어찌 보면 한국 사회는 강준만이 날카롭게 해부한 부동산 역사는 굳건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성열 연출의 '집집'은 박정금(황정민 분)을 통해 애잔한 삶의 집으로 포개 놓고 20년의 간극 사이로 동일한 두 사람의 집은 양극화로 인간의 욕망으로 전이 된 부동산 대한민국의 현재를 투영하고있다. 극 중 인물들의 삶이 시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선명한 무대로 그려 낼 수 있었던 것은 황정민의 감각적인 연기와 배우들의 연기에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자 박정금이 공사현장에서 장애가 된 아들 김재복(이산호 분)과 살았던 301호에 2021년 결혼을 앞둔 연미진이 혼인신고를 마친 뒤 불법으로 이사를 오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지워낼 수 없는 악취

무대는 월드컵 열풍이 한창이던 2002년 극 중 인물 박정금이 살았던 10평 남짓해 보이는 301호의 임대 아파트다. 통상 아파트의 내부 구조를 사실적으로 배치하기 마련인데, 선돌극장에 세운 집집의 내부면적은 가로 2미터 정도의 사선 구조다. 폭은 5미터쯤 되어 보인다. 오른쪽으로 301호로 통하는 현관 출입문이 상징적으로 보이고 그 사이가 아파트 복도로 설정되어 있다. 무대는 베란다 앞 외경이 한강뷰를 감상 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적으로 보이는데 중앙에서 바라보면 베란다구조를 통유리로 마감한 것 같아 보인다. 극 중 인물들이 거실에서 바라보는 서울 전경은 이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한강뷰와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임대 아파트는 거실 밖으로 전진할 수 없는 생존의 주거공간이며 연미진에게 임대 아파트는 강남아파트 한강뷰 거주와 동일한 욕망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연출은 무대에 카메라 2~3대를 세워 놓고 극 중 인물의 삶을 드라마 쇼트처럼 촬영하며 인물의 내면과 심리의 미세한 변화를 영상으로 투사시켰다. 연극적인 장치에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TV 영상기법을 중첩하는 구조로 기록의 효과를 낸다.

2중 창틀로 되어 있는 아파트 베란다 앞면으로 투사되는 사실적 영상은 무대 중간 스크린 막까지 확장되면서 다큐멘터리 한 장면을 공연 극장에서 바라보는 구도를 생산하고 극 중 인물의 삶을 현실적인 구조를 이루게 했다. 한강뷰가 내다보이는 마지막 남은 서울 인근 임대 아파트는 원룸보다 문간방이 하나 더 딸려 있고 부엌이 분리되어 있어 주거 경쟁률이 높다. 연미진은 친구 김민정(김동이 분)의 외삼촌 관리소장( 민병욱 분)의 특혜로 302호로 이사 온 날부터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난지도의 흔적과 시간을 지워낼수록 층간소음과 악취에 시달리고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의 박정금의 시간으로 교차 된다. 층간소음, 악취, 싱크대(돈)는 두 극 중 인물의 삶의 기억을 과거와 현재로 연결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층간소음은 서민들이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소리다. 20년이 흘러도 대한민국은 강남 사회 양극화로 분열되어 삶의 소음은 격렬해 지고 있고 악취는 가난을 지워낼 수 없는 흔적이다. 국가는 한일월드컵 개최로 난지도에서 살았던 매립장 주민들한테 국민임대주택을 지어주었을 뿐 난지도의 삶을 온전히 지워주지 못했다.

소유권이 없는 정부 소유의 임대주택은 각층의 복도와 호실로 구분되어 있어도 301호 옆집 이웃(정은경 분)이 호수를 말하지 않고 옆집 타령한다는 관리소장을 향해 "내 집도 아닌데 몇 호고 나발이고 뭔 상관이래"하는 것처럼 집은 언제든 집을 비워줘야 하는 주거공간으로 층과 동, 호수는 잊혀가는 삶의 파편처럼 기억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애절한 밑바닥 악취는 100키로 이웃 남자 (이형우 분)가 기다리는 고도처럼 임대주택은 내 집이 될 수 없는 삶이다. 삶의 구원은 강남 유명 건설사 아파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청약 전쟁에서 이기고 캡투자 재테크로 아파트를 투기의 수단으로 매번 갈아타는 것뿐이다. 부동산을 하는 엄마 때문에 요즘 아파트를 '줍줍'하면서 입주권 딱지로 시세 차익을 보고 있다는 김민정의 말에 월드컵 4강 대한민국의 신화는 대한민국 아파트의 불패 신화로 이어졌고 2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층간소음과 악취, 붙박이로 붙어 있는 싱크대뿐이며, 달라진 것은 '줍줍'하는 소유의 욕망들이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아파트 계급 사회와 욕망

빌딩 청소를 하며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아가는 박정금의 유일한 희망은 장애 아들한테 임대주택을 물려주는 것이다. 빌딩 청소를 하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을 금리 높은 증권사 통장에 넣어달라며 집사 성현숙 (박소연 분)한데 맡기고 " 세상과 가족도 못 믿고, 자신도 못 믿고 앞날도 못 믿겠다"며 오로지 주님만 믿는다. 영구 임대 재계약을 하기 위해서 아들 김재복(이산호 분) 부양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회복지사(이형우 분) 말에 박정금은" 혹여라도 증명을 못 하면 살고 있는 집에서도 나가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임대주택 301호는 빌딩 청소를 하며 받는 월급도 집에서 쫒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싱크대 밑에 숨기고 살아야 할 정도로 생존의 집이다. 부동산정보 프로그램 장면은 부동산 광풍의 현장이다. 무대는 방송프로그램 현장으로 바뀌고 남녀 사회자는 청약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역세권 신도시 공략법, 분양조건, 신혼부부 특별 공급 물량과 맞벌이 부부의 소득 기준으로 분양되는 신혼희망타운 얘기를 전화로 연결하고 임대주택 입주를 위해 혼인신고도 서두른 연미진에게 아파트 분양과 청약 전쟁은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장벽을 넘어설 수 없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희망이 매몰되어 가는 연미진의 표정을 영상으로 클로즈업하면서 아파트 계급 사회에서 살아가며 일그러져 가는 욕망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임대 아파트의 악취를 제거 할 수 없는 부동산 공화국을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쓰레기 산에 산다고 쓰레기 삶'으로 살지 않으려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박정금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과 집 한 채도 마음대로 소유 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투병으로 박정금을 죽음으로 처리한 후 현금을 맡긴 성현숙 집사가 노인이 되어 301호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집사는 박정금이 마지막 남긴 '씽..크..대'라는 말을 듣고 찾아온다. 집사의 극 중 인물 설정은 다층적인 의미로 변주된다. 무신론적인 절망의 시선이며, 극 중 인물 100키로 처럼 기다려도 내 집이 될 수 없어 희망사다리가 끊겨 있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표상하고 있다. 박정금의 간절한 기도에도 달라질 수 없는 것은 씽크대 밑 268만원을 포기 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면서도 그래도 희망의 세상을 기대 할수 있는 것은 301호에서 잠을 잘 수 없는 비정규직 연미진의 남편(이성근, 심재완 분)이 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박정금의 아들 김재복은 "(중략) 20년을 저 집에서 우두커니 지내다 보니, 내가 방문 같고 수도꼭지 같고 타일 같고 그렇더라고요. 내가 집이 되었어요" 이 대사 한마디로 한현주 작, 이성열 연출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우리 사회의 집이란 무엇인지 묻게 만들고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소극장 공간 연출의 섬세함도 살아있었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우선 한국 사회 부동산 시장의 민낯과 아파트 한 채가 부의 재테크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욕망과 애잔한 임대 아파트 집 한 채의 삶을 박정금과 연미진을 통해 20년의 간극을 현재시간 처럼 밀도있게 전개시켰고 희곡도 탄탄하다. 이번 무대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무대디자인과 공간 활용, 드라마를 녹화하는 것처럼 카메라 영상을 활용한 점이다. 섬세한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을 증폭시킨 심리묘사가 작의를 살려내면서도 이성열 연출의 시선이 선명했다. 배우의 감각적인 표현을 카메라 앵글로 투영될 장면을 섬세하게 포착(싱크대의 비닐봉지 현금, 박정금, 연미진 두 인물의 삶의 교차적인 시선, 부동산 스튜디오 연미진의 클로즈업) 등을 해 낸 것인데, 무대 공간에서 구현되는 장면들과 이질적인 충돌 없이 무대에서 연속됐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공간의 디테일한 활용이었다. 동사무소 장면을 301호 공간과 구조적으로 연결시키고 거리를 두고 분리를 시킴으로써 내 집의 절박한 현실을 드러내 주었으며 부동산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사회자들이 부동산정보를 설명하는 장면 사이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일그러져 가는 연미진의 내면의 변화를 영상을 통해 관찰하게 하는 장면과 전화 연결 장면에서 내 집 마련의 초조함이 그로테스크하게 극대화 될 수 있도록 설정한 장면은 작품을 관통하는 강한 장면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반복적으로 장면을 확장한 것은 박정금의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찬송가를 극의 전환처럼 활용했는데 박정금의 간절한 믿음과 기도에도 악취를 씻겨낼 수 없는 부동산 공화국의 정부와 국가, 구원자가 부재한 조롱은 분위기를 전환 시키는 장면이 되면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한 장면이라도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희곡을 선명하게 그려낸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극 중 인물의 캐릭터로 살아있는 배우들의 역할로 각 장면은 혈전 되지 않은 채로 무대에서 용해되었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 인물의 캐릭터와 황정민의 연기

황정민의 연기는 극단 목화에서 체득된 우리 말 대사(언어)의 리듬감과 TV 드라마와 영화로 다져진 생활 대사의 감각으로 배우 황정민의 화술은 표본을 보여주었고 대사와 몸이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집중과 감정의 몰입감은 '연기하지 않는 연기의 감각'을 보여주었다. 황정민의 캐스팅으로 황정민의 집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장면을 돌려보자. 비스듬히 누워 월드컵 경기 TV 화면을 보며 "어, 넣었어,"하며 몸을 비틀며 선잠을 자는 장면부터 황정민다운 연기로 장면의 집중도를 높이며 배우의 존재가 사라지고 살아있는 연기로 완전한 극 중 인물화가 되는 장면은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던 4장 2002년 박정금 집 장면이다. 이 장면은 성현숙 집사와 대화로 채워지는 장면이다. 매봉산의 배롱나무 추억과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었던 석유 비축 기지, 난지도의 기억을 되살리며 하느님의 믿음이 더욱 충만해져 가는 박정금은 집사에 대한 믿음으로 간절해져 간다.

황정민 연기는 상대 배우의 감정과 대사를 0.1초도 흘리지 않고 들으면서 표정과 몸으로 연기하는 감각적 반응의 연기를 보여준다. 대체로 두 명의 대화에서는 대사의 템포를 놓치기 쉽고 감정의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황정민은 듣는 것 자체가 말하는 연기보다 집중된 몰입감을 보이며 장면의 리듬감을 형성한다. 표정과 몸의 감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연기의 기술로 설명될 수 없는 배우의 타고난 본능의 감각이다. 그만큼 황정민의 역할은 컸다. 이 밖에도 배우 정은경은 임대 아파트 이웃집 아줌마였고, 이산호는 엄마로 분한 황정민의 연기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가 분명했다. 고도를 기다리는 100키로 이형우는 설정이 절묘했다. 성공의 6할은 연미진의 민해심, 남편 이성근의 배우 심재완, 관리소장의 민병욱, 김민정역의 김동이 등 배우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 있었고 4할은 이성열 연출의 섬세함에 있었다. 아쉬운 점은 부동산 생방송 스튜디오 장면이다. 예능 프로처럼 장면을 만들어야 했을까. 배우들도 벅차고, 의미도 없었다. 소리로만 전달하고 연미진의 욕망을 영상으로 좀 더 확장했다면 어땠을까. 한현주 작, 이성열 연출 <집집: 하우스 소나타>는 강준만의 「부동산 약탈국가」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집집: 하우스 소나타. 극단 백수광부 제공.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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