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영남지역 연극을 위해 60년을 달려온 팔순노장 김삼일 연출의 4막 인생 <언덕을 넘어서 가자>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는 인간 실존을 불교론 적으로 성찰해 온 이만희 작가 작품이다. 제 8회 늘푸른연극제 김삼일 연출로 무대화된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70대를 바라보는 세 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벌이는 노년의 사랑과 황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만희 작가는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1990)를 발표하면서 한국연극에 주목을 받아왔다. 인간 내면과 삶을 파고드는 작가 철학으로 90년대 이후 한국연극의 대표 작가이자 흥행 작가가 되었다. <불 좀 꺼주세요>(1992), <돼지와 오토바이>(1993), <피고지고 피고지고>(1993), <용띠 개띠>(1997), <돌아서서 떠나라>(1996) 등이 대표작품이다. 특히 극단 민예의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어둠이었습니다>(1990)는 그해 '동아 연극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백상예술대상을 받으면서 삶의 풍경을 재현해 내는 이만희 시대를 열었다. 재공연 되고 있는 작품인데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구·경북과 영남지역 연극사에서 지역연극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해온 연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김삼일 선생은 1962년부터 KBS 포항 방송국 전속 성우를 시작으로 은하 극단을 창단(1964)했다.지역 최초 포항시립극단(1984)을 창단하면서 전국적으로 시립극단 시대를 마련했다.

작품을 위해 70대 언덕에 오르는 배우들도 모였다. 최지혜, 이태훈, 백진기 세 명의 배우가 극중 인물로 무대에서 티격태격 거리면서도 그 사이로 웃음이 넘치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60년 '찐' 우정으로 뭉친다. 인생 4막 언덕을 넘어 100세 시대를 달리면서도 첫사랑 순애보는 보온 밥솥 온기처럼 뜨끈뜨끈하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기억만큼은 그 시절 그대로이고 '초딩 정신' 의리로 버티는 짠한 우정은 언덕을 넘어설 인생 식량으로 충분해 보인다. 완애의 첫사랑 타령이 오글거릴 만도 한데 향기가 넘치고 수줍은 고백 장면은 웃음으로 응원가를 부를 정도다. 감동과 여운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연극이다. 이태훈 배우는 삶의 진솔한 향기가 묻어날 정도로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 주었다. 인간의 삶을 다양한 캐릭터로 짜내는 '연기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반하는 생활 연기를 보여주었다. 프로골퍼가 이완 상태로 강력한 장타를 날리듯.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 20대 성우로 데뷔해 63년 동안 영남연극을 지켜온 천상배우이자 연출가 김삼일

대구·경북, 영남 출신의 근현대 연극의 대표적인 연극인들이 많다. 3, 1운동 직후에 신극을 소개하고 2년제 조선 배우학교를 설립한 현철(본명, 玄僖運)은 부산 동래 출신이고 동랑 유치진 선생은 통영 출신이다. 근대연극 연출가 홍해성은 대구다. 극작가 이광래는 마산이며 한국 무대미술가 이병복 선생과 한국연극의 평론을 개척한 여석기 선생은 경북 김천이 고향이다. 경북고등학교 재학시절 연극<밀주>에 출연하면서 연극인으로 연극운동가와 이론가로 살아오신 이창동 영화감독의 형 故)이필동 선생은 대구 출신으로 『새로 쓴 대구 연극사』를 남겼다. 20대 시절부터 김삼일 선생과 연극으로 인연을 맺으며 대구 연극을 위해 헌신해 왔다. '지역 연극 발전에 필요한 일'이라면 실행해 옮겨야 하는 김삼일 선생은 전국에 국공립극단(시립극단)이 부재할 무렵 포항시립극단을 창단해 전국 최초로 지역 시립극단 시대를 열었고 1983년부터 2013년도까지 상임 연출가로 포항연극을 발전시켜 왔다. 살아온 시간을 보면 태어난 울산 장생포의 잔잔한 파도와 같다. 연극배우, 성우, 연출가, 교수, 기획경영자, 시립극단 예술 감독,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도 종착점은 연극 위의 인생들처럼 느껴졌다. KBS 포항방송국 성우로 시작해 대구방송국을 거치면서 초창기에 성우들과 연극을 만들었고 보도국장까지 지내면서도 퇴근 후에는 연극배우로, 연출가로 작품을 무대화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1회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 전신)에서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반 작, 1983)로 여자 연기상을 수상한 뒤 제3회 전국연극제에서는 차범석 작 <대지의 딸>로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한 것이 40년 전이다. 연출상 수상 작품은 제9회 <산불>이었다. 이후에도 배우와 연극연출을 병행 하며 지역연극 토양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다. 연극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이유로 한국연극의 리얼리즘연극을 계승해야 한다는 지역 연극인의 사명감이 김삼일 연출 연극 정신의 뿌리다. 데뷔 초부터 이해랑 연극의 리얼리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분투해 왔고 차범석 선생의 작품을 평생 연구하며 무대화해 왔다. 연출 작품을 보면 차범석 선생의 작품과 사실주의 계열로 분류되는 희곡작품들이 데뷔부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해랑, 차범석의 한국연극 사실주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지역 연극인이라는 점에서는 이견(異見)이 없다. 대나무 같은 연극인 인생은 이해랑 연극상(2004, 제14회)과 제1회 홍해성 연극상은 인생에 박힌 훈장이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1942년생으로 올해 팔순이 넘는 노장에도 연극에 대한 기록과 집념은 청춘이다. 몸에 붙은 습관인 것 같다. 항상 수첩에 기록하는데 60년이 흘러도 작품 년도와 출연 배우, 무대 구조까지 섬세하게 기억하는 기자정신으로 느껴졌고 『경북 연극사극사, 포항연극 100년사』를 출판했다. 지난해 『영남연극사1: 1910-1960』을 펴냈고 연대기를 늘려 3편까지 준비하고 있다. '김삼일이 바라보는 영남 연극사'는 1922년대 부산, 대구, 마산, 포항 등지에서 연극을 계몽운동으로 시작될 무렵부터 3, 1운동 전후 지역 연극사를 서술하고 있다. 해방 전, 후 연극과 6, 25전쟁 이후 경상남도 연극 환경, 경상북도 연극, 대구 국립극단시대 사료(史料)를 토대로 1960년대의 대구연극과 포항, 경주의 연극사까지 당시 지역연극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 눈에 띄는 이야기가 있다. 성우로 활동하던 KBS 대구 방송국 극회를 다루고 있는 부분인데 향토 극작가 故)김홍곤 교수와의 인연이다. 경북대 영문과 교수이자 1958년 서울신문 희곡공모에서 「우물」로 당선되면서 지역연극인을 배출해 작가와 경북대 복현예술제를 회상하는 문장에서는 20대 김삼일 연출이 그려졌다.

당시 문리대 연극반에서 <산여인>(작 김경옥)을 연출하고 있었다. 김삼일 선생은 아카시아 꽃잎을 꺾어 무대를 만들었는데 이를 계기로 김홍곤 작가하고 사제(師弟) 인연이 된다. 연출과 연기에 조언을 주던 작가는 사실적인 무대장치를 해놓은 것을 보고 "학생극은 실험성이 있어야 하고, 나무 몇 개만 세우고 음향효과로 산속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말 했는데 이때 그의 연극에 대한 지론을 듣고 스승으로 대하며 연극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는 회상은 생생하다. 1963년 12월 KBSBS 포항 방송국에서 방송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작가와 성우를 선발해 포항 지역 연극이 태동한 기억들과 은하 극단을 창단할 당시 얘기다. 겨울 바다 영일만을 바라보며 누군가 밤하늘을 가리키며 '저 하늘의 은하수!'말을 듣고 포항 지역 최초 극단인 은하 극장이 탄생한 포항 연극의 시작이었다는 글에서는 성우를 하면서도 20대 청년 김삼일은 연극에 대한 갈증이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영남연극사1: 1910-1960』에서 연극학자 유민영 선생은"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을 배출한 고장인 영남 연극사의 정리는 지역 연극인의 혼(魂)이 담겨있다"고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필동 선생은 '늘 대본을 끼고 다닌 우직한 사람'이라고 회상했고 작가 노경식 선생은 "대구 경북을 통틀어서 '연극인 김삼일'하면, 그곳에서 연극 문전을 들락거린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라고 연극인 인생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 언덕을 넘는 노년의 첫사랑 '순애보'

무대는 극 중 인물 완애(백진기 분)가 운영하는 '비철금속' 고물상이다. 사무실과 숙소로 쓰고 있는 중앙공간은 소파와 낡은 사무 가구, 싱크대가 놓여 있다. 생활 고철들이 극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는데, 무대 전체는 완애가 운영하는 고물상 사무실로 알루미늄 샷시로 된 출입문이 보이고 동네 전경(건물)들이 유리문으로 반사되어 어느 한 동네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은 싱크대와 냉장고 중앙으로는 널찍한 소파가 보인다. 앞은 탁자가 놓여있다. 옆쪽은 숙소로 이동하는 공간이다. "아카시아 꽃잎 향기를 풍기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 '휘파람을 불며' 트로트가 라디오로 흘러나오고 선반 위에 라디오 한 대가 보인다. 장면 전환 음악으로 연속적으로 사용됐는데 비트를 조절해서인지 분위기와 가사 말이 착착 달라붙는다. 친구자룡(이태훈 분)이 들어오면 설거지하던 완애가 냄비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완애 눈치를 보며 냄비를 능청스럽게 척척 피하는 첫 장면부터 웃음이 터지고 친구 고물상에서 빌붙어 사는 자룡은 공금을 슬쩍해 카바레와 게임장에서 내 돈처럼 써서 딸과 완애한테 돈 무서운 줄 모른다고 구박 받아도 인생 별거 있냐며, "구두쇠처럼 쩨쩨하게 굴지 말라"며 당당하다. " 공금에 손대면 인간이 아니다. 이번으로 끝이다. 믿어 임마, 이틀 동안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반성 많이 했어." 싹싹 빌 줄 아는 '처세 남' 이다. ​공짜 좋아하지 말고, 일 안 하고 불로소득 바라지 말라는 완애 말에 "구두쇠로 사는 건 안 부럽다"며 폼 나는 노년을 살고 싶은 '허세 남'이면서도 유기견 8마리를 외면할 수 없는 인정 많은 자룡이다. 관객은 60년 세월 동창 두 사람이 벌이는 난타전에 웃고, 칠순 나이에 인생의 우정을 넘어가는 두 사람은 국민학교 시절 그대로다. 마음으로 끝난 첫사랑 실패로 싱글로 사는 완애는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평생 구두쇠로 살아왔어도 우정만큼은 찐하다. 채소밭 땅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노년의 노총각은 재개발로 재력가가 됐으면서도 아끼고 절약하며 살아가는 완애에 대한 자룡의 시선은 곱지 않다. "칠십 언덕을 올라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해외여행 한번 못해보고 궁색 맞게 사는 부자 구두쇠"이고 자룡은 '노년에도 인생 폼이 허당 인생'이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자룡이 도박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는 것으로 두 사람의 고물상 동거생활은 다시 시작된다. 매일 개똥을 치우게 하는 놈한테는 사료도 줄 수 없다며 고함을 쳐대는 완애 보란 듯 견들을 알뜰히 챙겨주는 자룡이다. 완애는 무뚝뚝하고 때로 '버럭 남'이 되면서도 말 한마디 고백 못하는 황혼의 순정남이 되어가면서 70세의 첫사랑 이야기에 몰입감을 높인다. ‛허당 인생, 찌질 한 구두쇠 노년'의 인생에서 청춘보다 뜨거운 황혼의 순정남 이야기로 반전되는데 다혜(최지혜 분) 등장으로 밝혀진다. 평생 간직해온 고물 라디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완애의 순애보는 '짠한 감동' 으로 돌려놓는다. 한 달 십오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다혜는 합의금 돈 천만 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완애가 냉장고 위에 보관해 둔 9백만 원이 든 통장을 자룡은 자기 돈처럼 건네고 추억은 무대로 플래시백 되면서 소환되어진다. 완애는 60년 첫사랑을 향해 "아들 합의금하고, 주렁주렁 달린 빚부터 갚으라며" 3천만 원으로 우정의 마음을 선물하고 5학년 때 짝사랑하던 다혜를 납치해 동네 산에서 동거하려고 했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터진다. 운동장에서 포크댄스를 추던 기억, 완애가 다혜를 향해 욕한 사건, 분식점과 헌책방, 단팥죽 집, 교회 등으로 매일 다혜를 미행한 기억을 꺼내며 무대는 인생 4막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준다.

마지막 장면에 라디오 비밀이 밝혀진다. 거금을 털어 완애한테 소포를 붙인 다혜의 고백들로 서로 첫사랑이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무대는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어서야 가자….'가 흘러나오고 완애의 사랑 고백은 노년 되어서야 당당해진다. "이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서 내 청춘을 불태우고 싶다."고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에서는 칠십 평생 간직한 완애 순애보의 전류가 흐른다. 세 사람이 이스탄불 여행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룡은 이십 대와 100세대 사랑 얘기를 꺼내 든다. "노인의 사랑이 왜 위대한데. 퍼주고 퍼줘도 아까울 게 없거든. 죽음이 코앞인데 아까울 게 뭐 있겠냐. 헌데 이십 때 땐 그게 되냐? 재고 또 재고 (중략) 그건 사랑이 아니지 비즈니스지" 60년의 순애보와 우정은 코끝이 짠한 웃음을 주면서도 82세에 시인으로 등단한 김삼일 연출이 언덕을 넘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언덕을 넘어서 가자. 한국연극협회, 늘푸른연극제 제공.

◆ '척척' 맡는 이태훈, 백진기, 최지혜 배우들의 캐미

이번 공연은 연출과 배우들의 연극이다. 이태훈 선생은 극중 인물 그 자체로 분했고 백진기 선생은 안정적인 화술을 보여주었다.1년 4~5편 연극작품에 출연하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극단 민예 출신의 대학로 섭외 1순위 이태훈 (69) 선생은 배우와 연출을 해오면서 대표작품으로는 <서울말뚝이>, <놀부뎐> 등 200여 편의 무대에서 배우의 존재를 실천하며 후배 연극인한테 존경받아 오고 있다. 완애 역 백진기(69)선생은 극단 은하 대표와 경북연극협회장을 맡고 있고 '포항국제바다연극제'를 23년 동안 개최해 오고 있다. 2001년 일본 야쿠모국제연극제 출품작 <산 씻김>으로 최우수작품상과 연기상을 수상, 카나다 리버플국제연극제, 이집트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 프랑스 오리악거리축제 등 국제연극제에 참가해 온 경북의 대표적인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다. 다혜 역의 60대 최지혜 배우도 그 역할에 충실함을 보여주며 캐릭터를 들어냈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연출과 세 사람의 황혼 얘기처럼 들렸고 배우들은 서강대 메리홀 언덕을 캐미와 앙상블의 안전한 속도를 유지했다. 팔순 노장의 연출 김삼일 선생은 여전히 무대에서 청춘이고 인생 4막의 언덕넘기는 지금부터인 것 같다. 60년을 무대에서 버텨가는 김삼일 연출의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된장처럼 담백하고 무대를 화려한 기술로 관객을 설득하기보다 연극의 필수요소로만 집을 지어도 단단하다. 배우들은 살아온 것처럼 각자 집을 만들며 삶에 풍경에서 극 중 인물들 대사에 웃음이 터지고 고물상을 하는 완애 돈을 자기 돈처럼 쓰면서도 "인생별거 있냐. 결혼도 안하고 혼자 사는 놈 재산 여동생한테 준들 뭐하게? 인생 그렇게 꼬장꼬장하게 살지 말고 즐겨야지 임마."이태훈의 능청스러운 말이 가슴에 박힌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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