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여성 서사의 역사화가 탁월한 작품, 김수희 연출의<아들에게>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수희가 연출한 극단 미인의 <아들에게>(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기획 코르코르디움)는 올해 창작산실 작품으로 한국전쟁 직전 북으로 들어간 뒤 미국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현 앨리스( Alice Hyun, 한국명 현미옥, 1903-1955)'의 이야기다. <아들에게>의 작가 구두리는 연출 김수희의 필명이다. 현 앨리스는 상해임시정부에서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을 함께 한 현순 목사의 큰 딸이다. <아들에게>는 1953년 함경북도 청진 해안가에서 현 앨리스가 죽음을 맞는 순간부터 시간을 역주행하여 그녀가 태어난 시점부터 죽음(1953)까지 반세기 이 땅의 근현대정치사를 관통한다. 현순 목사의 가족사를 다룬 연극으로는 그의 아들 '피터 현(1906~1993)'을 조명(照明)하며 역동적인 근현대사를 다루었던 <에어콘 없는 방> 정도를 기억할 수 있다.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해방정국과 이념 충돌, 한국전쟁과 미 군정, 유신시대가 소환된다. <에어콘 없는 방>에서 이데올로기의 담론을 관통했다면, <아들에게>는 당대 지식인이자 활동가였던 한 여성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의 이념 갈등의 비극을 담아내고 있다.

등장인물은 이 공연이 다루는 연대기적 시간에 비해 많지 않다. 현 앨리스를 중심으로 현순 목사와 이 마리아, 동생 피터 현, 박헌영과 주세죽, 현 앨리스의 남편 정봉균 정도가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극 중 인물인 박기자(김은석 분)가 현 앨리스의 죽음부터 그녀의 반세기에 걸친 삶의 시공간을 동행하며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극은 구성된다. 박기자는 이국땅에서 자살로 불행한 삶을 마감한 현 앨리스의 아들 정 웰링턴임이 극 후반 극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허구적 설정이다. 지식인 여성의 삶을 다이제스트로 무대화한 이야기는 정형적이고 진부하게 전달될 수 있는데, <아들에게>는 이념논쟁, 정치혐오, 정치갈등으로 양극화된 지금의 한국사회를 지형적으로 파고드는 근현대사의 맥락을 입체적인 무대로 설득한다. 낯선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설명과 변화무쌍한 시공간이 무대를 이탈하지 않은 채, 긴장의 속도감을 유지시키는 연출 기법으로 3시간을 내달렸다. 김수희 연출은 무대감독이 현 앨리스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브레히트적 장난기도 발동하며, 1, 2부 3시간을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구성했다.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지는 현 앨리스의 죽음을 피지컬적 앙상블로 표현하는 프롤로그부터 장면 분할의 공간감과 영상의 빼어난 확장과 적용, 아르코 대공연장의 구조적 활용과 줄어들지 않는 에너지로 질주하며 시공간을 융합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현 앨리스라는 잊혀진 한 여성의 삶을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게 한다.

중앙과 좌우 배우들의 이동통로 사이, 삼면으로 세워진 판넬 구조의 무대에 스크린처럼 투사되는 빛과 그림자, 영상은 '현, 앨리스, 미옥'으로 만들어진 현 앨리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현대 설치미술처럼도 느껴진다. 라이브 연주되는 전자 드럼 효과는 역사의 시간과 극 중 인물 내면의 변화를 드러내는 감정을 집약하고 채운다. 무대에서 반세기의 긴 시간을 다루는 연출력과 무대를 파고들며 달려가는 속도감은 역사, 실존 인물의 이야기, 무대, 연출, 아르코 대극장 공간과 구조의 이해가 완벽하게 계산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없는 것인데, <아들에게>는 이 모든 요소가 연극적으로 확장되고 활용되었다. 그것은 연극 무대가 영화적인 입체감의 효과를 끌어내고 극대화할 수 있는 한계를 깨는 도전처럼 보이면서도, 결과적으로 연극 무대를 벗어나지 않고 보여주는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영화와 뮤지컬적 무대표현의 연동성을 활용하면서도 연극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수희 연출이 그동안 <소년 B가 사는 집 >, <말뫼의 눈물 >, <공장>, <아버지들> 등 여성서사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져오며 연극작업을 지속해온 결과이다. 김수희 연출이 이끄는 극단 미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을 통해 노동, 여성, 이념갈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번 <아들에게>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하와이 현지 답사, 낭독공연을 거치며 공을 들였고, 그 결과 선보인 이번 무대는 창작산실의 새로운 창작극 개발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작품이 되었다.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현 앨리스의 삶과 신념, 그녀의 가족사와 근현대사

대한제국 시절 사탕수수 농장으로 향하는 하와이 이민의 역사가 시작되는 1903년, 현 앨리스의 부친인 현순 목사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이민선 콥틱호를 타고 통역 활동 목적으로 임신 7개월의 아내 이 마리아와 함께 하와이로 향했다. 그 해 하와이에서 현 앨리스는 출생했다. 현 앨리스의 삶은 독립운동의 한 축이자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대립하던 아버지 현순 목사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가 52세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행적은 이렇다. 이 땅의 최초의 해외 국적자였던 한국계 미국인 현 앨리스는 8남매 중 맏딸로 하와이에서 출생, 중국 상하이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일본 유학을 갔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 30대에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미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중1949년 평양으로 들어가 1955년 즈음 박헌영 숙청에 연류되어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현 앨리스는 사상가, 정치가, 여성운동가이기에 앞서,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여성이자 딸이자 어머니였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이념투쟁과 6·25 전쟁을 거치며 좌우 이념 대립과 전세계적 전란의 시대 근대 교육을 받았던 현 앨리스는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된 정치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신여성이자 엘리트였다. 변화하는 시대에 격렬하게 조응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공산당원 활동으로 남한과 미국에서 버림받고 북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결망이었다. 실체적 진실은 밝혀진 바 없다. 박헌영에게 북한이 인민공화국 전복 혐의로 사형 판결을 내리기 위해, 모스크바를 경유 가족이 기다리는 하와이로 돌아가려했던 현 앨리스를 간첩 혐의로 체포해 속전속결로 처형한 사실을 당시 재판기록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그녀의 부친인 현순 목사는 대한제국 정부가 설립한 관립 영어학교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뒤, 노동 이민자들의 통역관으로 미국 하와이로 떠나 호놀룰루와 카우아이섬에서 활동했다. 이들 가족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1919년 3·1 운동이다. 현순 목사는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열기로 달아오르던 상하이로 향한다. 현순 목사는 노동청년단의 핵심 인물이었던 박헌영과 친분을 쌓는다. 1920년대 상하이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박헌영과 현 앨리스, 그녀의 동생 현 피터 사이에 교분이 생기면서 사회주의 개혁을 꿈꾸게 된다. 이들이 상하이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소속이었다는 점을 보면, 현 앨리스의 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신념은 큰딸을 정치인으로 키우고 싶어 했던 현순 목사의 욕망을 통해 키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순 목사는 상하이 임정에서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현 앨리스는 사회주의 노선을 걸으며 미국 내 공산주의 활동을 하게 된다. 일본 유학 중 현 앨리스는 3.1 운동 만세 시위에 참여한 정준 (본명 정봉균)을 만나 27살에 결혼하고 첫딸을 낳지만 보수적인 남편 집안에 적응하지 못해 딸을 놔두고 이혼한다. 하와이로 돌아온 뒤 홀로 낳은 아들 정 웰링턴은 해방 후 의학 공부를 위해 현 앨리스의 평양행에 동행했다가 체코슬로바키아에 홀로 남겨진 채 모진 삶을 이어가던 중 자살한다. 현 앨리스가 박헌영을 통해 월북한 후 체코슬로바키아에 정 웰링턴을 남겨둔 채 처형된 이후의 일이다.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기억과 소멸, 역사 인식을 끌어내는 그림자의 효과

근현대사를 다루는 연극은 역사 인식을 설득하는 연출 방식이 중요하다. 사실적인 역사만 전달되면 관객은 설득될 수 없고, 허구적 설정이 과하면 역사는 상상으로 모호해질 수 있다. 이런 유형은 특정 인물의 삶을 연대기 순으로 전달하는 무대 구현 방식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아들에게>에서 김수희 연출은 무대의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비우고 그 위에 나무 평판을 이용해 가벽을 삼면으로 세우고 영상을 투사해 무대를 확장시켰다. 근현대사의 중요 장면은 빛, 음악, 영상을 활용해 만들었다. 극적 긴장감은 라이브로 연주되는 전자 드럼을 통해 고조시켰는데, 장면과 시대 분위기, 인물 내면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전자 드럼 음악이 장면의 효과를 드러내는데만 활용되지 않고, 인물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현 앨리스 내면의 변화는 리듬이면서도 무대에 가시화할 수 없는 타자들의 소리로, 역사로, 시간으로 다가선다. 마치 그것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무대는 샤막으로 극 중 인물들의 실루엣이 그림자처럼 비쳐진다. 거친 파도 소리와 바닷가 해안의 영상이 투사되는데, 삼면의 가벽을 가득 채우는 입체감이 상당하다. 죽음을 직감한 삶의 욕망과 최후의 말들이 쏟아지고 바다 속으로 던져진 채 수장(水葬)되는 현 앨리스의 죽음은 신체 움직임으로 처리된다.

현 앨리스에게 바다는 북쪽 청진 해안으로부터 이남 한강의 물길을 따라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회귀(回歸)의 원천이다. 현 앨리스의 이념과 신념은 죽어서야 자유가 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 일본과 중국, 북한까지 특정 국가의 시민이 될 수 없었던 비극적 삶을 지워낼 수 있는 것도 물 줄기이다. 바다는 죽음이면서도 다시 시작되는 회귀의 공간이다. 김수희 연출은 현 앨리스를 바다를 통해 고향땅으로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극 중 인물인 박기자는 현 앨리스가 죽음의 순간 깨어난 미지의 공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인터뷰어로서 현 앨리스가 되돌리는 그녀의 삶의 순간에 동행한다. 현 앨리스는 마치 일기장을 써내려가듯 과거 기억을 소환한다. 1903년 출생부터 1955년 죽음의 순간까지 하와이의 유년기, 일본 유학과 남편과의 만남과 결혼, 상해임정과 독립운동, 해방과 미국 매카시즘, 한국전쟁과 사회주의 투쟁 등 현 앨리스의 삶은 우리의 근현대사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녀는 이국땅에 두고 온 아들을 목놓아 부른다. 그 순간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박기자이다. 극 중 인물들을 무대로 투사하는 그림자의 설정은 기억과 소멸을 반복하며 살아있는 자들이 벌이는 갈등의 정치판과 잊혀진 존재들의 역사를 소환한다. 무대 전면에 투영된 그림자는 '부재하는 존재', '존재하는 부재'처럼 잊혀지고 소멸된 시간이면서도 기억해야 할, 잊혀지지 않는 현재인 것이다. 무대 위에 선 극 중 인물과 무대 전면에 투영된 그들의 그림자는 소멸된 존재가 아닌, 인식해야 할 현재가 된다. 그림자의 효과로 연대기 순으로 배치한 역사의 시간과 공간 설정 구도가 진부함을 넘어 지금, 여기의 역사(의 인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현 앨리스의 비극적인 삶이 역사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림자로 처리된 시대를 은유하는 감각적인 방식 덕분이다. 현 앨리스라는 한 여성의 일대기 이상으로 전체를 돋보이게 했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손자(정 웰링턴)을 그리워하는 이 마리아와 현순 목사가 나누는 담담한 대화이다. "나도 태평양을 건넜고 앨리스도 태평양을 건넜어요. 티비타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우리가 그 아이의 땅이 돼줄 수 있어요. 아이가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해봐요." 현 앨리스의 반세기 동안 청진해역으로부터 한강 물줄기를 따라 태평양까지 흘러온 좌우 이념의 물길은 여전히 지금도 흐르고 있기에 이념을 넘어선 주체적 자유의 땅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밖에도 현 앨리스와 현순 목사가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 일본웨이터의 희화화된 동작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장면, 물에 빠진 현 앨리스의 어린 딸이 익사에 이르는 장면을 영상 촬영 각도를 이용해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표현한 장면 등은 역사의 내용을 진지한 태도로 바라보면서도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하와이, 상하이, 일본, 정봉균 집 등 시공간의 변화를 표현하는 속도감 있는 전환과 1부 마지막 장면인 현 앨리스가 열정과 벅찬 기대감으로 하와이로 내달리는 장면의 군무는 극적 효과가 대단했다. 이때 무대 정면의 공간을 개방하면서 드럼 연주자를 노출시켰다. 7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4층의 어느 한 집만 불이 켜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또 2부에서 사용한 회전무대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현 앨리스와 박기자(아들)의 관계가 좁혀들지 않은 채 낯선 존재로 인식됨을 드러내기 위해 마주 선 두 사람을 태운 회전무대는 계속 돌아간다. 개방된 무대 가장 앞쪽으로 박기자(아들)이 뛰어들면서 동시에 암전되는데, 이는 아들의 죽음을 의미함과 함께 현 앨리스의 모든 것이 멈춰버림을 의미하는 듯했다. 모두 연출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아들에게> 무대에서 김수희 연출은 드러나면서도 과하지 않았고, 그에 부합하는 절묘한 대사와 장면으로 구성된 희곡텍스트도 훌륭했다. <아들에게>는 버릴 장면이 없었다. 현 앨리스로 분한 강해진의 연기는 무대를 내달리며 3시간을 버텨내는 일정한 에너지가 좋았고, 강해진을 받쳐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박기자 역의 김은석도 훌륭했다. 남권아, 정나진 등 출연 배우들의 역할이 무대에서 존재하는 힘도 컸다. 아르코 대극장의 무대 공간을 확장하는 공간 배치, 장면의 타이밍, 단순한 전환 장치에 머물지 않고 공간에 입체감을 더한 영상, 내면을 토로하는 독백 장면의 클로즈업 효과 등, 김수희 연출 작품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아들에게>는 무대 한계에 대한 연출의 도전처럼 보였고, 그것을 무대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박기자(아들)와 현 앨리스의 죽음 직전의 장면을 소환해보자. 아들은 말한다. "우리는 잊혀진 존재예요." 현미옥은 읊조린다. "맞아. 그러니 가자, 우리의 세상은 저 뒤편이야. 이 무대 뒤쪽. 보지 못했고 그래서 알 수 없었던 그 길. (중략) 너도 같이 가보지 않으련." 현 앨리스와 그녀가 살았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정병준 교수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를 추천한다.

연극 아들에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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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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