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발해조선의 역사 (21)

북방에 발해-남방의 신라…통일신라 아닌 '남북국시대'였다
'대조영, 고구려 잔존 세력 모아 건국'…유득공, 첫 발해 역사서 '발해고' 편간
명나라 사람 위환의 저서 '황명구변고'…선비·말갈·여진도 한국민족으로 묶어
중국의 동북공정 혁파할 혁명적 저술

유득공과 그의 저서 '발해고'
유득공과 그의 저서 '발해고'

▶한국사를 바꾼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渤海考)'

'발해고'는 유득공(1748~1807)이 발해의 역사문화에 대한 자료를 모아 1784년(정조8)에 편간한 것으로 현존하는 한국의 발해 역사서 중 최초의 책이다

'발해고'는 초간본과 수정본이 있다. 저자는 1784년 1차로 초고본 '발해고'를 편간했는데 뒤에 누락된 자료를 보완하고 고증에 오류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여 1793년 무렵 수정본 '발해고'를 완성하였다.

신라의 최치원은 당나라 태사 시중(太師侍中)에게 올린 글에서 "고구려의 잔존 세력들이 동족을 끌어모아 북쪽의 태백산 아래를 근거지로 하여 나라 이름을 발해라 하였다(高句麗殘孼類聚 北依太白山下 國號渤海)"라고 말했는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최치원열전을 쓰면서 이를 인용하였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라는 것을 김부식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김부식은 발해사를 한국사의 영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김부식이 역사가로서 발해가 고구려의 잔존 세력들이 세운 나라인 것을 알면서도 발해사를 한국사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커다란 오류이다.

일연은 발해사가 한국사라는 인식을 갖고 '삼국유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말갈과 발해를 다루었다.

말갈 발해 조항 주석에서는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의봉(儀鳳) 3년(678) 고종(高宗) 무인(戊寅)에 고구려의 잔존 세력들이 동족을 끌어모아 북쪽의 태백산을 근거지로 하여 국호를 발해라 하였다"라는 '삼국사'의 기록과 "고구려의 옛 장수인 대조영이 고구려의 남은 병사들을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라 하였다(高麗舊將祚榮姓大氏 聚殘兵 立國於太伯山南 國號渤海)"라는 '신라고기'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였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인용된 '삼국사'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아니라 '구삼국사'로 보여지고 '신라고기'는 지금 전하지 않으니 아마도 고려때까지는 전해오다가 유실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삼국사기',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에 발해에 대한 단편적 언급이 보이고 허목(許穆)의 '기언(記言)', 이익(李瀷)의 '성호사설', 이종휘(李種徽)의 '동사(東史)' 등에서 발해를 독립적 항목으로 다루고 있지만 발해사가 한국사라는 뚜렸한 인식은 부족했다.

발해사를 한국사의 범주에 포함시켜 한국역사의 체계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유득공의 '발해고'이다. 발해사를 한국사로 보아야 한다는 저자의 이론적 근거는 '발해고'의 다음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옛날에 고씨가 북쪽에 살면서 고구려라 하였고 부여씨가 서남쪽에 살면서 백제라 하였으며 박씨, 석씨, 김씨가 동남쪽에 살면서 신라라 하였으니 이들이 삼국이다. 마땅히 '삼국사'가 있어야 하는데 고려가 이를 편찬하였으니 옳은 일이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하자 김씨가 그 남쪽을 차지하고 대씨(大氏)가 그 북쪽을 차지하여 발해라 하였으니 이것이 남북국이다. 마땅히 남북국의 역사책이 있어야 하는데 고려에서 이를 편찬하지 않았으니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밝히고 당시 북방의 발해와 남방의 신라가 병립하였으므로 그 시기는 통일신라기가 아닌 남북국시대라고 주장하며 남북국시대라는 관점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유득공이 '발해고'를 저술하지 않았더라면 압록강 너머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던 위대한 발해사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다. 따라서 유득공의 '발해고'가 한국사를 바꿨다고 말할 수 있다.

▶명나라 때 위환(魏煥)이 쓴 '황명구변고(皇明九邊考)'

'황명구변고'는 명나라때 호남성 장사長沙 출신 위환이 당시 중국의 변경 방어를 위한 이론을 체계화하여 쓴 책이다.

위환은 가정(嘉靖) 8년(1529) 진사시에 합격하여 가흥부추관(嘉興府推官),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 사천첨사(四川僉事) 등을 역임했다.

'황명구변고' 앞에 가정(嘉靖) 20년에 동지장사부사(同知長沙府事) 채찬(蔡纘)이 지은 서문이 게재되어 있는데, 가정은 명나라 11대 황제 세종의 연호로서 가정 20년은 서기 1541년이 된다.

한양조선의 이율곡 선생이 1536년에 태어나 1584년에 서거하셨으니 위환은 율곡과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위환은 명나라시대의 변경을 요동(遼東), 계주(薊州), 선부(宣府), 대동(大同), 삼관(三關), 유림(楡林), 영하(寧夏), 감숙(甘肅), 고원(固原) 9개 지역으로 분류한 다음 각 변경마다 다시 보장고(保障考), 책임고(責任考), 군마고(軍馬考), 전량고(錢糧考), 변이고(邊夷考), 경략고(經略考)로 세분하여 다루었다. '구변고'는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환의 '황명구변고'에는 한국사의 혁명을 가져다줄 획기적 내용이 담겨 있다

유득공의 '발해고'는 한국사에서 잃어버릴뻔한 발해사 하나를 되찾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위환의 '황명구변고' 가운데는 한국사 또는 한국민족사 연구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혁명적 내용이 담겨 있다. 그것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동이는 바로 구이의 지역이다. 소위 말하는 견이, 방이, 우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가 그들이다.

뒤에 조선, 고구려, 여진, 읍루, 신라, 백제, 복여(명나라 때 부여 땅을 복여로 표기함), 동호, 오환, 선비, 발해, 옥저, 삼한, 예맥, 일습, 안정, 낙랑, 현도, 진번, 임둔, 대방, 숙신, 말갈, 물길, 고려, 북맥, 거란, 고죽 등의 국가가 되었다.

역대에 겸병이 일정하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오직 동쪽의 조선, 동북쪽의 여진 여러 부락, 서쪽의 올량합 삼위가 있을 뿐이다.

(東夷卽九夷之地 所謂 畎夷 方夷 于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是也 後爲朝鮮 高句麗 女直 挹婁 新羅 百濟 伏餘 東胡 烏桓 鮮卑 渤海 沃沮 三韓 濊貊 日霫 安定 樂浪 玄菟 眞蕃 臨屯 帶方 肅愼 靺鞨 勿吉 高麗 北貊 契丹 孤竹等國 歷代兼倂不常 今所存者 惟東有朝鮮 東北有女直諸部落 西有兀良哈三衛 )"

위의 내용은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동이족은 아홉 개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9이족은 나중에 28개 민족으로 분파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28개 민족으로 분파된 동이족은 명나라때 이르러 조선, 여진, 올량합 3개 민족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서 특기할 사항은 동이의 9개 민족이 뒤에 다시 28개 민족으로 분파되었다고 말하며 그 민족명칭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동안 중국사의 영역에서 다루어 왔던 고죽국, 숙신, 읍루, 여진, 동호, 오환, 선비, 말갈, 물길, 거란 등을 모두 중국민족에 포함시키지 않고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동일시하며 이를 한국민족과 동일민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죽국, 동호, 오환, 선비, 읍루, 물길, 말갈, 여진은 발해조선의 자손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한국의 반도사학은 한국사를 저술할 때 대륙에서 활동한 고죽국, 동호, 오환, 선비, 읍루, 물길, 말갈, 여진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거나 간혹 언급할 경우 이를 우리 민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민족으로 취급한다.

일부 민족사학자 중에 숙신, 동호, 선비 등을 우리 민족사에서 언급한 경우가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로 뒷받침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동이족을 28개 민족으로 세분하여 일일이 그 명칭을 들어 말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득공의 '발해고'는 발해사 하나를 한국사로 포함시키는데 그쳤지만 명나라 위환이 쓴 '황명구변고'는 동북방 전체 민족사를 중국사가 아닌 동이사, 한국민족사의 영역에서 다루는 파격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고조선은 단군조선으로 시작되는데 위환의 '구변고'는 고조선을 이들 동이족 28개 국가 중의 첫 국가로 등장시켰다. 따라서 동북방에서 고조선을 이어 건국한 여러 나라는 고조선에 뿌리를 둔 단군의 자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방에서 활동한 역사상의 동이족을 모두 중국민족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한국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사까지 중국사에 귀속시킨다.

자신이 중국의 한족이면서도 하북성에 있던 고죽국까지 중국민족이 아닌 한국민족과 동일시하는 파격을 선보인 명나라 위환의 '황명구변고'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혁파하고 발해유역의 고대 한국민족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혁명적 저술이다.

앞으로 고죽국, 오환, 선비, 물길, 말갈, 거란, 여진 등을 발해조선을 계승한 밝달민족으로 포함시켜 한국민족사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통일을 넘어서 우리 민족의 대륙을 향한 웅비의 새날이 열린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명나라때 위환이 쓴 '황명구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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