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지역 대학병원 초진 '별 따기'…의료진은 번아웃 직전

의료 공백 한달째 장기화…환자·남은 의료진 임계점
인력 부족해 진료 규모 반으로…일부 과 신규 예약 받지 않아
중증·응급 제외 2차 병원 안내…의료계 전체 분괴 우려 나와

한 달을 넘긴 전공의 집단 사직 여파로 대구의 상급종합병원도 진료와 수술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자 외래환자 수가 줄고 있다. 22일 대구 중구 한 대학병원 외래접수처가 한 달 전(왼쪽)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한 달을 넘긴 전공의 집단 사직 여파로 대구의 상급종합병원도 진료와 수술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자 외래환자 수가 줄고 있다. 22일 대구 중구 한 대학병원 외래접수처가 한 달 전(왼쪽)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A(60)씨는 최근 관절염으로 대구의 한 상급종합병원 진료를 예약하려다 실패했다. 해당 진료과 교수들의 예약이 꽉 찬 데다 더 이상 초진 예약을 받기 어렵다는 말을 접수부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주변 사람들이 '요즘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뚝 떨어져 예약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귀띔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는데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됐다"며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의료 공백 사태가 언제쯤 끝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전공의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장기화로 대구 시내 상급종합병원 진료 차질이 피부로 느껴질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을 제외하고 비슷한 규모의 광역시보다 상급종합병원이 많아 어느 정도 수요가 분산돼 타 지역보다 좀 더 버텨왔을 뿐 이제 대구도 타 지역처럼 '의료 대란'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22일 대구 시내 5개 대학병원(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진료과에서 초진 진료예약이 안 되는 경우가 최근 들어 빈번하다.

각 병원들이 지난달부터 진료규모 자체를 50~60% 줄인 상태인데다 의료 공백 사태가 한 달을 넘어가면서 교수를 포함한 의료진들의 피로가 누적, 신규 예약을 받을 수 없는 진료과들이 부쩍 늘었다.

대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유방·갑상선 외과의 경우 예전에도 진료 대기 예약이 길었었는데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그 예약이 더 미뤄지다보니 기존 예약 환자들 소화에도 의료진들이 버거워하고 있다"며 "점점 의료진들이 한계에 이르고 있어 환자를 치료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대학병원은 암 환자 등 중증·응급 환자가 아닌 환자들은 진료예약을 받지 않고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 등으로 환자를 안내하기도 한다. 대학병원 의사 입장에서는 진료의 연속성 문제 때문에 중증 환자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인한 피로 누적은 한계인 상황이다.

의료진들의 피로누적은 결국 의료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구 한 대학병원 교수는 "현재 연구실에 간이침대를 펴놓고 쪽잠 잠깐 자고 환자를 본 지 꽤 됐다"며 "고갈된 체력 때문에 잘못된 판단이나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교수들이 당직에 외래진료,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좀더 버티기 위해서는 외래진료를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을 찾는 발길도 예전보다는 줄었다. "의료 공백 사태 때문에 큰 병원 가도 바로 진료받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영 나사렛종합병원 원장은 "최근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학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에서도 의료 공백으로 진료받기 힘든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하더라"며 "의료 공백 사태가 길어지면 상급종합병원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가 버티지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