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왜 러시아에는 테러가 그치지 않는가?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지난 20년 새 7번째이다. 러시아에서 왜 테러가 끊이지 않을까?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이슬람 세력의 대립 때문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호라산(ISIS-K)은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범행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크렘린이 무슬림들의 피로 손을 적시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테러가 무슬림의 지하드(성전)라고 천명한 것이다. 미국도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이라고 본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배후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정보가 옳다면, 러시아 정부는 진실보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무자비한 정치의 세계에서 인간의 슬픔을 어루만질 곳은 드물다.

테러의 직접적 책임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러시아의 강대국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냉전 시대 소련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을 장악하면 소련은 미국의 걸프만 석유 공급선을 위협하고, 걸프 지역으로 나가는 발판을 얻을 수 있었다. 10여 년간 소련군 62만 명이 투입되고, 1만5천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오히려 소련 제국이 자멸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소련 해체 후 러시아는 1994~2009년 사이 체첸 전쟁을 벌였다. 체첸인은 수니파 이슬람교도다. 러시아 혁명 때 10만여 명이 처형되거나 강제 이주당했다. 2차대전 때 독일군에 협조한 이유로 인구의 절반인 50여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고, 그 과정에서 23만 명이 죽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체첸은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체첸에는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고, 흑해 유정의 송유관이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더 중요한 것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연방 내 이슬람 공화국들의 독립에 불을 댕기는 것이었다. 러시아로서는 어떤 희생을 치러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고, 무자비한 유혈 진압을 불사했다.

2015년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고, 테러 집단인 이슬람국가 격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작전 과정에서 2만여 명의 민간인도 죽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비로소 세계의 패권국가로 귀환했다. 소련이 붕괴한 지 25년 만에 국제사회에서 힘과 명예를 되찾은 것이다.

요컨대 이번 테러의 저류에는 반세기에 걸친 러시아와 이슬람 세력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강대국의 패권과 이슬람의 저항이 부딪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어떤 역사적 사명이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을 갖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은 다소 예외적이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러시아는 특별하다. 신명(神命)을 부여받았다는 신념이 뿌리 깊다.

1917년 후 러시아 공산당은 세계혁명의 신탁을 믿었다. 오늘날은 러시아 문명이 서구나 아시아와 다르며, 러시아가 유라시아를 지배해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를 신앙한다. 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교수인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G. Dugin)이 그 사도다. 푸틴은 물론 러시아 대중은 그 열렬한 신도들이다.

국민 시인 푸시킨은 일찍이 "신이시여, 우리 러시아는 참으로 암담한 나라입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20세기 말 소련 해체 후 러시아인들의 심정이 그랬다. 초강대국에서 초라한 나라로 전락한 좌절감에 시달렸다. 오늘날 러시아 국민은 힘과 번영을 원한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아도 굳건히 푸틴을 지지한다.

정적을 약물로 암살하는 독극물정치(toxic politics)에도 무심하다. 푸틴의 독재에 저항해 온 나발니가 얼마 전 감옥에서 의문사했지만, 푸틴은 87%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불과 30년 전 러시아는 세계 공산주의의 심장이었다. 지금은 마르크스-레닌이즘의 폐허 위에 강대국을 열망하는 유라시아주의가 우뚝 섰다. 푸틴의 이데올로그 수르코프는 주권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를 주장한다.

"자유, 그것은 옳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허용될 수는 없다"고 본다. 스탈린처럼 푸틴은 "러시아를 구원하기 위해 신이 러시아에 보내준 선물"이다. 모든 테러는 악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의 연원에는 지배와 저항, 탈냉전과 독재, 초라함을 견딜 수 없는 정치적 인간의 원초적 욕구(thymos·인정 욕구)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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