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대재해법 좀 유예해주세요"…안전보건담당자 영업사원이 맡기도

지난 1월 27일 시행 두 달 지나도록 여전히 어수선한 산업현장

26일 대구 북구 노원동 3공단 내 한 제조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부품을 선별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6일 대구 북구 노원동 3공단 내 한 제조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부품을 선별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법의 적용 범위가 모호한 데다 여러 뜻으로 해석될 여지도 많아 대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지난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된 지 두 달이 됐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애초에 산업 현장에서의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를 막고자 마련한 법이지만, 오히려 소규모 사업장에선 업무·비용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큰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법이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선 영업사원이나 인사, 품질 관리자 등이 안전·보건 관리 담당자로 배정돼 업무가 늘어나거나, 외부 강사를 초빙해 교육을 하는 등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직원들이 서류 작업에 매달리다 보니 시설물이나 근로자 관리에 소홀해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대구의 한 기계 부품 제조 기업 안전·보건 관리자는 "인사 업무를 하던 중 중대재해법 업무를 맡게 돼 일이 늘어났다"며 "가뜩이나 챙길 서류가 많은데 모르는 업무까지 겹치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지역 중소업체들은 5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과 동일한 수준으로 대비해야 해 불만이 가득하다. 사업장 업종별, 규모별 특성도 전혀 고려되지 않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곳도 허다한 실정이다.

식품 제조 기업 대표는 "안전관리자를 두고 교육을 시작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유예를 해주면 면밀하게 준비를 하겠으나,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협력사의 지원을 받아 위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활유 취급 소규모 업체 대표는 "사실 안전관리자 선임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고 있다"며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14일 영남지역에서는 53개 경제단체가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영남권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역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유예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지만, 끝내 유예되지 않고 중대재해법은 시행됐다"면서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이나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나 똑같은 조건으로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영세한 업체들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키워드=중대재해처벌법

산업 현장에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법. 2022년 1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먼저 시행됐고, 유예기간 2년을 거쳐 지난 1월 27일부터 5∼49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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