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암 수술 1년 만에 마라톤 풀코스 금메달 "자신과의 싸움에서 다들 이기시길"

기적의 마라토너 박현준 씨
2024 대구마라톤대회서도 우승의 기쁨

작년 11월 jtbc 주최 서울마라톤 현장. 대장암을 극복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박현준 씨. 박 씨는 이날 풀코스 일반부 부문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작년 11월 jtbc 주최 서울마라톤 현장. 대장암을 극복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박현준 씨. 박 씨는 이날 풀코스 일반부 부문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2022년 가을, 박현준(41) 씨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컨디션 난조로 찾은 병원에서 들려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수술 첫 날 세 발자국도 못 걷고 쓰러졌고,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리고 박 씨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죽을 날만 바라보고 살아야겠구나"

그로부터 1년 후, 박 씨는 전국 마라톤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걷기도 힘들었던 그는 풀코스 42.195km를 완주했고, 2만명 참가자 중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투병생활과 마라톤. 이 둘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란거죠.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내 자신과 싸워나가고 있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고 1년이면 회복하기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달리기를 했고, 또 우승까지 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주변 반응도 그랬다. 그래서 큰 수술이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당시에 정말 심각했다. 대장암 2기 진단을 받았는데, 자세히 말하면 직장암이다. 그래서 직장 일부를 절제했다. 3개월 정도는 일상생활이 아예 안 됐다.

작년 11월 jtbc 주최 서울마라톤 현장. 대장암을 극복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박현준 씨. 박 씨는 이날 풀코스 일반부 부문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작년 11월 jtbc 주최 서울마라톤 현장. 대장암을 극복하고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한 박현준 씨. 박 씨는 이날 풀코스 일반부 부문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걷기도 힘들었을 그 당시에는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못했을 것 같다.

▶뛰기는커녕 '내가 이렇게 해서 살아갈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또 처음 진단은 대장암 3기로 받았던 터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술을 하려고 보니 전이도 안됐고 해서 2기로 재진단을 받았다. 어찌됐든 암이라는 자체가 공포였다.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그런 시기였다.

-그러면 언제부터 달리기를 한 건가. 의사가 말리지는 않던가.

▶수술하고 조금 지나자 의사가 걷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회복을 위해 걸어다니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하루에 2~3만보 정도씩 걸었던 것 같다. 달리기를 시작한건 2023년 3월쯤이었으니, 수술 후 6개월이 됐을 때였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나. 어떻게 달릴 생각을 했나.

▶중학교 3학년부터 중장거리 달리기 선수 생활을 했었다. 실업팀에도 1년 정도 있었으니 달리기를 업으로 삼던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그러다 2007년도쯤 달리기를 그만 뒀고, 그렇게 달리기와는 담을 쌓고 지냈었다. 운동선수들은 공감할텐데,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그게 업이 되면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건강했던 시절 그만하고 싶었던 달리기가 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다시 생각났나.

▶여러 감정이 있었지만 간단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번 보여주고 싶다', 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못 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힘들더라. 그토록 힘들었던 달리기인데, 그게 그렇게 절실하더라. 그래서 한번 달려봤다. 천천히라도 한번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경북대학교 운동장에서 연습 중인 박현준 씨. 대장암을 진단받고 수술까지 치른. 암환자의 모습이라고 보기에 믿기 어려울 쌩쌩한 모습이다.
경북대학교 운동장에서 연습 중인 박현준 씨. 대장암을 진단받고 수술까지 치른. 암환자의 모습이라고 보기에 믿기 어려울 쌩쌩한 모습이다.

-다시 달렸을 때 어땠나.

▶처음에는 30분을 달렸다. 힘들더라. 그래도 계속 조금씩 늘려갔다. 40분, 50분. 한달 쯤 되니 1시간을 달릴 수 있겠더라. 신기했다. 사실 처음 뛸 때에는 두려움도 컸다. 배가 아프지는 않을까? 혈변이 나오는건 아닐까? 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잘 적응하더라. 예전 선수 시절 뛰던 느낌 그대로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주변 반응도 뜨거웠을 것 같다.

▶미쳤다고 했다. 기껏 수술 받았는데 다시 아프고 싶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내 몸을 믿었다. 달렸는데 몸이 안 좋았다면 나도 멈췄을 거다. 하지만 괜찮았고, 또 내가 이토록 행복하면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도 뛰는 게 즐거우면 뛰라고 하더라. 물론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의사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건강 달리기 정도로 허락만 받은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나는 참 나쁜 환자다. 하지만 계속 달렸고, 예전 기량을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리니 잠깐 놀라시더니 몸에 큰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달리기가 좋을 수가 있다는 말을 해주셨다. 작년에 금메달 땄을 때도 의사 선생님이 가장 기뻐해 주셨다.

-직장을 절제했다면 식이 조절도 했을텐데, 달리는 힘은 잘 먹어야 나오는 것 아닌가.

▶여느 암환자처럼 아직도 식이조절을 하고있다. 암에는 완치가 없지 않는가. 가공식품, 붉은 고기류 안 먹고. 커피도 안 마시고 그러고 산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들도 달리기를 하지 않는가. 또한 달리는 데에는 식이조절이 오히려 이득이 됐다. 가벼운 몸은 나를 더 잘 달리게 만든다.

기적의 마라토너 박현준 씨.
기적의 마라토너 박현준 씨.

-다시 달리게 됐다 하더라도 대회까지는 꿈도 못 꿨을 것 같다.

▶물론이다. 대회를 목표로 다시 달린 것은 아니다. 그땐 죽냐사냐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몸이 회복되는 걸 느끼니 슬슬 대회도 나가고 싶더라. 작년 4월 대구 마라톤 하프 부문에 친구가 신청을 했었는데, 갑자기 못 나가게 됐다고 연락이 와서 대리 출전을 했었다. 그런데 그때 입상을 했다. 물론 번호를 빌려 나간 거라 상은 취소가 됐지만 아프고 나서 첫 대회라 의미가 깊다. 그 후에 트레드밀 대회 21km 부문 2등, 안산마스터즈 10km 부문 2등을 했다.

-풀코스 출전은 작년 금메달을 땄다는 전국 대회가 처음이었나

▶그렇다. 아프고 나서 풀코스는 당시 대회가 첫 대회였다. '수술 하고는 걸을 수 있을까. 회복 후에는 뛸 수는 있을까. 뛰고 나서는 풀코스는 못 뛰겠지' 이렇게 계속 생각을 해왔는데 결국 풀코스까지 뛰게 됐다. 작년 11월 jtbc 주최 서울 마라톤이었는데, 이때 일반부 풀코스 부문에서 우승을 했다.

-마라톤 문외한이라 묻는 질문인데, 그 대회가 유명한 대회인가

▶국내 메이저 대회라고 하면 4개가 있다. 춘천마라톤, jtbc 서울 마라톤, 동아일보 마라톤, 대구 마라톤. 그 중 한 개다.

-그런 대회에서 완주, 완주를 넘어서 우승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웃음) 더 놀라시라고 해드리는 말인데, 허드슨이라고 그 전년도 우승자인데 나에게 지기 전에는 2~3년 동안 아무에게도 진 적이 없다더라. 그 선수를 제치고 1등을 했다.

-기사가 나가는 날에 대구마라톤이 열린다. 대구마라톤대회에도 출전 하는가.

▶물론이다. 대구마라톤대회 풀코스 부문에 나간다. 이번에도 컨디션이 좋다. 기대해볼만 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서 하는 달리기에 많이들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를 보고 힘을 낸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쑥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참 행복하다.

마라톤 풀코스는 왜 42.195km 일까. 이를 두고 전해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격전 끝에 페르시아군을 물리친 아테네군 병사가 기쁜 승전보를 전하려고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려갔는데, 그가 달린 거리가 42.195㎞여서 이를 마라톤 경기의 거리로 잡았다는 얘기다.

"저의 42.195km도 희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기쁜 승전보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는 달리고 또 달릴 겁니다. 함께 뛰는 모든 이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이기셨으면 좋겠네요. 마라톤이든, 인생이든, 모든 싸움에서 말입니다."

〈기사가 나간 당일 2024 대구마라톤대회가 열렸고, 박현준 씨는 풀코스 일반부(마스터즈) 남자 부문에서 1위의 기쁨을 맛봤다. 박 씨는 "1위를 넘어, 이제는 기록을 위해 뛸 것입니다. 고향에서 우승을 목표하고, 준비했고, 성공해서 참 기쁩니다"라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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