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수니와 칠공주’로 뜬 경북 칠곡 ‘실버 문화 1번지’

전병용 서부지역본부 부장

전병용 서부지역본부 부장
전병용 서부지역본부 부장

'트와이스, 블랙핑크, 뉴진스, 에스파, 스테이씨, 마마무…'. 국내외에서 유명한 여자 걸그룹이다.

이 못지않게 세계적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4리의 평균 연령 85세 8인조 할매 힙합 그룹 '수니와 칠공주'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랩'을 구사하며 'K-할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7월 마을 경로당에서 창단한 이들은 최고령 정두이(92) 할머니부터 최연소 장옥금(75) 할머니까지 폭넓은 연령대로 구성된 세계 최고령 힙합 그룹이다.

이들이 몸빼바지(일바지)에 헐렁한 티셔츠와 모자를 착용하고 엇박자 몸짓으로 들려주는 랩은 단순한 흉내 내기가 아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직접 쓴 가사에는 6·25전쟁을 겪은 아픔,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허망함, 여자로 태어나 못 배운 한 등이 구구절절 서려 슬픔과 웃음을 준다.

밭이나 매며 소일거리를 찾고 살던 보통 할머니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랩을 이제 한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한다. 세계적 통신사 로이터와 중국의 CCTV, 일본의 NHK 등 외신의 취재가 잇따른다.

국내 유수 업체들도 다양한 제안을 쏟아낸다. 최근 대형 금융그룹과 광고 촬영을 마쳤고, L사와 S사 등 대기업 광고나 다큐멘터리 제작 등 제안도 이어진다, 익명의 기부자가 거액을 찬조했고, 팬클럽까지 생기는 등 인기가 고공 상승 중이다.

전국 최초로 할매들의 랩을 활용한 노인 치매 예방 치료 프로그램도 개발됐다. 고립감을 해소하고 활력을 불어넣으며 노년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전망이다.

북한군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을 담은 '빨갱이는 코가 안 빨까요'나 '보훈을 모르면 국민이 아니지' 등 랩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MZ세대에게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영덕장사상륙작전기념관 등 대구경북의 현충 시설들을 직접 만든 랩으로 소개하는 뮤직비디오도 만든다.

현재 칠곡군에는 '수니와 칠공주' 외에도 '보람할매연극단' '우리는 청춘이다' '어깨동무' '텃밭 왕언니' 등 5개의 할매 힙합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결성됐을 때는 "할매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 "칠곡을 할매 도시로 만드는 것 아니냐?" 등 부정적 말이 쏟아졌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이런 편견을 과감히 혁파하고 노인 문화를 선도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개발하고 있다. 농촌의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할매래퍼, 할매글꼴 등을 내세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역발상을 했다.

김 군수는 "어르신들의 인생 경륜은 지혜를 가르치고 세대를 아우르는 보석"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들이 랩으로 용돈도 벌고,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거듭나며 행복해하고 있다. 칠곡군이 열어간 K-할매 콘텐츠가 전국적으로 알려져 노년층이 인생 2막을 주체적이고 풍요롭게 가꾸길 바란다"며 "칠곡할매문화관과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실버 문화 1번지로 발전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칠곡 할매들의 끝없는 도전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실버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모범 사례다. 이들의 의지와 상상력, 나아가 자신들만의 특별한 활력은 도전 정신을 잃어가는 청년들에게도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지금도 칠곡 할매들의 도전은 진행 중이다. 칠곡 할매들이 건강하게 천수(天數)를 누리며 랩을 때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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