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장미의 가시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오월의 여왕, 꽃 중의 꽃 장미의 계절이 왔다. 장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유명한 '장미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0년에 쓴 일기에 "감은 눈 위에 살포시 얹은 장미의 느낌은 일출 전의 잠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장미를 사랑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장미향수, 장미목욕 등 생활 속에 장미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장미에는 가시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장미를 소유하려고 꽃을 꺾다가 자칫 릴케처럼 장미 가시에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지나친 아름다움 때문에 감내해야만 하는 가시는 장미의 업보다.

돌아보면 장미에만 가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탱자나무, 아카시아, 가시오가피나무, 엄나무, 두릅, 가시연꽃 등 많은 다른 식물에도 가시가 있다. 말에도 가시가 있다. 릴케를 죽게 한 장미 가시가 말의 가시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가 쓴 '말테의 수기' '두이노의 비가' '오르테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는 가시투성이다. 릴케의 시를 읽다가 말의 가시에 찔려 오래 가슴 앓았던 시절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어떤 행복도 오래 누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곰곰 생각해보니 지금껏 내가 좋아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남에게 주거나 빼앗기면서 살았다.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미색 때문에 '장미'라고 불렸던 젊은 시절에 사귀던 여자친구를 절친한 죽마고우가 가로챈 일이 있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깊이 고민해본 결과 두 친구 모두 잃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 멍든 가슴 쓸어내리며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젊을 때는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던 세상이 나이 들어가면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있다. 말이 입안에서 나오기 때문에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 때로는 말 한마디에 죽을 만큼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사람의 말 때문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엉뚱한 소문을 퍼뜨려 생사람을 잡기도 한다. 누군가의 따듯한 말 한마디가 아쉬운 요즘이다. 심리학에서 '레테르 효과(letter effect)'라는 말이 있다. '비난보다 칭찬하라'는 의미로 많이 활용되는 용어다. 뭔가 부족한 사람에게 칭찬해주면 그 사람의 잠재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해인 수녀는 "고운 말 한마디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빛이 된다."('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중)라고 했다.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사랑의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시의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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