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동그랗다. 기억의 어느 시점에서 각도를 바꾸어 삶을 비출 때 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둥글고 하얀 송편처럼 오감을 자극하며 여러 사연을 담아 오므렸다가 펼치기를 반복한다. 추석 명절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빈틈없이 정돈되고 격을 갖춘 모습이 낯설었고 보름달이 차오르는 기운을 집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동그란 쟁반 위에 하얀 송편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쪽진 머리로 한복을 입고 앉아 반죽을 매만지셨다. 어머니는 곁에서 분주하게 차례상을 준비하며 마술을 부리듯 온갖 음식이 형태를 갖추었다. 두 분은 앉은 자리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나누셨지만 나는 오로지 송편 빚는 모습에 온 마음이 쏠려 있었다. 어린 마음을 눈치 챈 할머니가 동전만한 크기의 반죽을 떼어 손바닥에 올려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하얀 보름달이었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하얀 덩어리 촉감이 신기했다. 어머니는 반죽을 이리저리 굴려보라며 내게 일러주시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반죽 가운데를 움푹하게 눌렀다. 그 속에 팥소를 한 숟가락 듬뿍 넣고 꾹 누르시더니 하얀 반죽으로 팥을 보듬어 덮었다. 예뻤다. 고운 살덩어리 같은 것에 속을 넣는 것이 보름달에 소원을 담은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렇게 송편 속에 집안 대소사와 자식 앞일을 담고 덮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가 할머니께 육촌 어르신 병환이 깊어졌다고 말씀드리면 할머니는 찾아봬라고 간단히 답하셨다. 할머니께서 큰언니가 일은 잘 하고 있냐고 물으면 어머니는 맏언니 뿐 만 아니라 큰오빠, 작은오빠, 작은언니까지 줄줄이 상황을 읊으셨다. 직장 생활 이야기도 나오고 학교 이야기도 더해졌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송편을 만들어 동그란 쟁반 위에 올리셨다. 생활비나 학비 이야기로 넘어갈 때 즈음 두 분의 웃음 대신 한숨이 더해졌고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찜기에 솔잎을 깔고 보름달 모양의 하얀 송편을 가지런히 넣으셨다.
두 분의 이야기 속에서 달은 온갖 모양으로 빚어졌다. 일그러졌다가 조금씩 차올랐다가 다시 그믐달로 작아지기를 반복하며 한탄과 아쉬움이 뒤섞였다. 곁에서 보기에 보름달을 향한 간절한 바램을 송편 속에 가득 눌러 담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나도 어머니처럼 동글동글하게 반죽 모양을 만들고 팥소를 넣어 보름달로 채우려 했지만 매번 달은 일그러졌다. 울상이 된 내게 어머니는 괜찮다며 하얀 반죽을 덮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줬다.
그때는 몰랐다. 달이 모양을 바꾸며 곁에 함께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 나이가 돼 비로소 보름달을 기대하며 지나온 시절을 되돌아본다. 초승달을 등에 지고 새로운 출발과 희망을 꿈꿨던 때, 상현달 아래 삶의 성숙을 향하던 그때, 보름달 아래 두 손 모으셨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후에 하현달이 뜬 날, 삶의 변화를 느끼고 중년이 힘겹다고 울먹이던 내게 어머니는 또다시 괜찮다고 하셨다. 이제는 내가 그믐달 끝으로 사라진 할머니와 만월을 기다리며 송편을 빚던 어머니의 심정이 돼있다.
나의 추석은 매년 동그랗고 하얀 송편을 빚었던 그때로 돌아간다. 솔잎 위에 송편을 가지런히 놓고 찌면 둥근 모양의 송편이 팥소와 뭉쳐져 속은 쫀득하고 겉은 윤이 났다. 이제는 어디서도 맛볼 수 없지만 기울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달처럼 그리움을 둥글리며 추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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