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북서쪽에 있는 안강읍은 신라 경덕왕 때 백성이 편안하고 강녕하길 바라는 뜻을 담아 임금이 내린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산자수명하고 인심순후하여 영남의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릴 만큼 선비문화의 꽃을 피운 살기 좋은 고장이다.
그러나 이름처럼 편안해야 할 안강이 산대리에 있는 공용화기 포사격장 때문에 편치 않다. 50사단 16개 부대에서 연간 3천여 명이 이곳에서 사격훈련을 한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으로 매일 두려움 속에 산다. 일상적인 대화조차 방해를 받을 정도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안강에 포사격장이 들어선 것은 40여 년 전인 1982년이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변두리의 그저 쓸모없는 야산이었고 마침 길 건너편에 포탄을 제조하는 ㈜풍산 공장이 있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도심이 확장하면서 주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됐다.
현재 사격장 반경 1.5㎞ 내에 1만5천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20만 마리에 이르는 가축이 사육되고 있어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양동마을·옥산서원 등 세계유산지구와 인접해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유산은 과거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보호해야 할 소중한 자산인데 사격장으로 인해 그 이미지가 손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오랫동안 사격장 이전을 강력히 요구해 왔으나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대구에 있는 50사단 등 군부대를 인근 시군으로 이전할 계획이 발표돼 주민들은 포사격장 이전의 호기로 생각하고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방부가 군부대 이전 시 1천43만㎡(315만 평) 규모의 공용화기 사격장 부지를 제공해 달라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여기에 안강 사격장을 포함해서 이전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사격장 이전에 따른 비용은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경주시가 부담할 뜻이 있음을 밝혔고,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응답을 받은 바 있다.
이 문제는 자치단체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경주시는 현재 국방부, 대구시 등 관계 기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대구 군위, 경북 영천·상주·의성 등 4개 시군이 군부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곧 국방부에서 2, 3곳의 예비 후보지를 선정하고, 연말까지 최종 이전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장관이 교체되면서 국방부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는데 군부대 이전과 사격장 이전은 별개라는 것이다. 군부대를 이전하면서 관련 사격장을 그대로 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어차피 1천만㎡가 넘는 공용화기 사격장을 새로 만들 것이라면 기존의 소규모 포사격장도 포함해 이전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번 군부대 유치 신청을 받으면서 포사격장도 함께 이전을 추진했다면, 이를 원하는 시군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를 간과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안강 포사격장 이전을 함께 검토해 주길 바란다. 국방부 등 관계 기관은 소통 창구를 마련해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군부대 이전 후보지를 검토하는 지금이야말로 포사격장 이전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관계 기관은 지난 40여 년간 국가안보를 위해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온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에 귀 기울여 평화로운 안강을 되돌려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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