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농촌에서는 술도갓집과 과수원집이 상당히 부자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 고향 마을에도 도갓집이 있었다. 촌수가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각별하게 지내던 집안이었다. 그 도갓집에 어느 날 밤 도둑이 들었다. 곡식을 넣어둔 창고 문을 열려던 도둑은 이내 건장한 머슴들에게 덜미를 잡혀 마당에 꿇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수선스러운 바깥 인기척에 툇마루로 나온 안주인의 대응이 의외였다.
윽박지르는 머슴들을 오히려 나무라며 도둑에게 보리쌀이라도 두어 되 줘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생계형 도둑의 절박한 사정을 간파한 처분이었다. 평산 신씨인 송대 할매의 그 같은 순후한 처신을 두고 청송 심씨인 우리 할머니는 "송대댁 양반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송대댁'은 소대(松臺)에서 시집온 집안 할머니의 택호(宅號)였고, 나는 그 할머니를 '송대 할매'라고 불렀다.
소대는 경북 청송군 안덕면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평산 신씨 세거지였다. '안덕'(安德)은 면 단위 행정구역 명칭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곳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에도 안덕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자가 똑같고 면적도 비슷하다. 수려한 자연환경을 연출하는 안덕계곡이 있는 것도 같다. 서귀포 안덕이 제주도라는 섬 안의 지역이라면, 청송의 안덕은 산간 오지 내륙의 섬인 게 차이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송대 할매의 처신이 상징하듯 안덕은 자고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지닌 곳이다. '안덕'이란 이름은 조선 세종 때 안덕현(縣)이 생기면서 비롯되었다. 안덕을 중심으로 한 현동, 현서, 현남이라는 지명도 그렇게 파생된 것이다. 여러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안덕에서 1896년 5월 총포가 불을 뿜고 화살이 빗발치는 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감은리 전투'이다.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하는 전국의 항일 의병이 잇따랐는데, 청송 지역에서도 사족(士族)과 유림이 합심해서 심성지를 대장으로 한 의진을 결성했다. 그 청송의진(靑松義陣)이 의성의진 등과 합세해 안덕면 감은리에서 친일 관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이다.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일본군의 기세를 꺾어 놓은 값진 승리였다.
청송의진의 활동상을 기록한 '적원일기'(赤猿日記)에 따르면 '안덕에 포성이 진동하고 관군의 방화로 온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함안 조씨 집성촌인 감은리 마을 앞에 선 '병신창의 청송의병 감은리 항일 격전지' 표지석도 그 생생한 증거이다. 안덕의 선비들은 성리학적 세계관 유지를 위한 위정척사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서구의 신문물을 수용하려는 개화의 물결에도 적극 참여했다.
안덕면 복리 소대마을에는 1915년에 교회가 들어섰고 선교사 제임스 애덤스(안의와)가 예배를 주도했다. 교회는 일제에 대한 저항과 신교육의 산실이기도 했다. 복동교회는 두레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온 김진홍 목사가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이기도 하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 김 목사는 서울 청계천에서 활빈교회를 세웠으며, 빈민 선교와 유신정권 반대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구 계명대학교와 동산병원을 일으킨 신태식 명예총장도 송대 할매의 친정인 소대마을 출신이다. 신 명예총장 역시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일찍이 신학문을 익혔다. 대구 계성학교와 평양 숭실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교육계에 헌신하며 계명대의 발전과 도약에 봉사하는 일생을 살았다. 계명대의 종합대학 승격과 오늘날의 성서 캠퍼스 시대를 활짝 연 신일희 총장의 부친이다.
안덕은 비록 작은 면 지역에 불과하지만, 보수와 혁신이 부침을 거듭한 우리 현대사의 격랑을 고스란히 껴안았던 곳이다. 보수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선조의 터전이고,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피신 생활을 할 때 한동안 의지했던 아버지의 고향이다. 현재 우리나라 치안 총수인 조지호 경찰청장이 태어나 자란 곳도 안덕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방호정으로 향하는 중학생들의 소풍 행렬이 십 리에 이르던 산자수명한 안덕도 이제는 노쇠한 모습이 역력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기고 빈집이 늘어나는 고향에서 이제 무엇을 찾아야 할까. 더 이상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할 인재를 생산하고 양육할 기력마저 쇠퇴한 고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황량하다. 그러나 조상들의 충절과 정한이 어려 있는 '안덕'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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