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체육계·정계·불교계 쥐고 흔들던 이기흥의 흥망성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연임 제한 폐지 시도까지 해가면서 3선에 도전했던 이기흥(70) 대한체육회장의 3선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 이 회장은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379표를 받아 417표를 획득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이자 대한탁구협회장을 지낸 유승민(43)씨에게 38표 차이로 패했다.

당초 이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이 회장이 자녀 친구 부정 채용과 후원 물품 횡령 등 비위 혐의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하고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사회 전반에 뻗쳤던 그의 영향력 때문에 선거 내내 "이기흥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평가를 받아서였다.

◇정계에 뻗은 그의 손길... 든든한 뒷배는 뱃심 되다

이 회장은 1985년 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 보좌진으로 일하다 32세였던 1987년 우성광업방재란 회사를 차렸다. 이 회장과 일가는 1993년 우성산업개발 창업, 2000년 흥국산업 창업, 2024년 경인일보 인수에 이르기까지 보폭을 넓혀왔다.

그가 체육계로 눈을 돌린 건 2001년의 일이다. 임명직 대한근대5종연맹 부회장을 지낸 그는 선출직에 관심을 보였다. 2004년 대한카누연맹 회장, 2010년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거쳐 2016년 '체육대통령'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다.

대한체육회장이 된 그가 가장 공을 들였던 건 관료였다. 그가 취임한 뒤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자리는 전과 달리 이른바 '관료 전관예우' 용도로 바뀌었다. 이 회장은 2016년 취임 직후 전충렬 전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후임은 박근혜 정부에서 차관급 소청심사위원장이었던 김승호 씨 차지였다.

그 다음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한국조폐공사 사장과 조달청장을 맡았던 조용만 씨와 박춘섭 씨였다. 윤성욱 현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 때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었던 인사다.

이 회장이 챙긴 관료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늘 좋은 자리를 찾아갔다. 윤석열 정부 들어 김승호 전 총장은 인사혁신처장이 됐고 조용만 전 총장은 대한체육회를 관할하는 문체부 제2차관이 됐다. 박춘섭 전 총장은 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다.

지난해 1월16일 체육인대회 참석한 이기흥 회장과 바흐 IOC 위원장, 장상윤 사회수석. 연합뉴스
지난해 1월16일 체육인대회 참석한 이기흥 회장과 바흐 IOC 위원장, 장상윤 사회수석. 연합뉴스

이 회장의 예우를 받은 인사들이 권좌에 오르자 이 회장의 배포도 커졌다. 지난해 1월16일 이 회장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앞에 두고 '큰 일'을 벌였다.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24년 체육인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축사를 대독한 장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에게 '수신 윤석열 대통령님'이라고 적힌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체육 업무 행태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안'을 공개 전달했다. 저명 인사를 앞에 두고 대통령실 수석을 이용해 대한체육회를 관할로 둔 문체부를 공격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었다.

전직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한체육회 쪽에서 원래 대통령을 초대하려고 했는데 '이상한 움직임'이 있을 거란 얘기가 돌아 장 수석을 대신 보낸 것"이라며 "뒷배가 든든해서 이와 같은 일을 벌이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정계 이어 종교계까지 섭렵... 고비 때마다 나타나는 구원투수들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이 회장 최측근은 박 수석뿐만 아니다. 이 회장 조카 이강래 씨는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지난해까지 근무하며 종교 담당으로 불교계를 살뜰히 챙겼다.

지난해 4월1일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통도사에 방문해 주지 승려 현덕과 사진을 찍은 이강래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통도사 홈페이지
지난해 4월1일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통도사에 방문해 주지 승려 현덕과 사진을 찍은 이강래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선임행정관. 통도사 홈페이지

이 회장은 체육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불교계에도 공을 들였다. 2012년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 됐고 2022년엔 제5기 불교리더스포럼 상임대표로 선출됐다.

불교계는 이 회장이 궁지에 몰리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지난해 11월12일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 승려들은 "이 회장의 스포츠공정위원회 심사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 국무조정실이 당사자에게 최종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서둘러 비위 점검 결과를 발표한 것은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은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이는 이 회장의 대한체육회장 출마를 막기 위한 선거개입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냈다.

국무조정실이 이 회장을 수사 의뢰한지 이틀 만의 일이었다. 이틀 전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대한체육회가 지불해야 하는 경기복 비용 등을 이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한 스포츠 종목단체 회장이 대납한 의혹과 함께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 소유 평창올림픽 마케팅 물품 가운데 1천700만원 상당 휴대전화 14대를 대장에 기록하지 않고 지인에게 제공했다며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이 회장은 2022년 8월 국가대표선수촌 직원으로 자기 자녀의 대학 친구를 부당 채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는데 장남은 조계종이 소유한 동국대 대학원 교수다. 장녀는 한국체육대 교편을 잡았다.

이 회장이 스포츠공정위 심사를 받게 된 건 3선 도전을 마음먹어서였다. 대한체육회 정관상 회장직은 연임만 가능하다. 3선을 도전하려면 스포츠공정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연임 제한 폐지 내용을 담은 정관 개정안 결의를 주도했지만 문체부가 이를 불허해 스포츠공정위를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감사원 감사위원 출신 김병철 스포츠공정위원장은 이 회장이 이미 자신의 특별보좌관을 거쳤던 사람이었다.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장이 된 직후인 2017년 1월 성석호 전 국회입법조사처 수석 전문위원과 함께 김 전 위원을 특보로 임명했다. 김 전 위원은 2년 간 특보 생활을 마친 뒤 2019년 스포츠공정위원장이 됐고 지난해 11월12일 이 회장의 연임 신청서에 승인 도장을 찍었다. 3선 도전의 문을 열어준 것이었다.

김 전 위원이 특보로 임명된 2017년 1월 대한체육회 이사로 임명된 인물로는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었다. 그 사이 2선 국회의원이 된 임 의원은 지난해 9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 때 이 회장이 위기에 몰리자 이 회장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권력 보단 변화... 개혁 택한 체육인들

큰 선거가 열릴 때마다 이 회장은 '큰손'으로 불렸다. 지역 체육 조직과 불교 조직을 둘 다 어우를 수 있는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이 회장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지역으로 내려가면 지역 내 가장 큰 절 주지와 지역체육회장이 끌어모으는 사람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돕는 사람이 당선이 되면 그는 다시 다시 이 회장의 뒷배가 되는 권력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다.

하지만 체육인들 선택은 권력 보다 변화였다. 유 당선인은 "체육인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당선될 수 있었다"며 "그래서 부담된다. 화답하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이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42대 대한체육회장으로 당선된 유승민이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42대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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