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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수용] 스크린쿼터(Screen Qu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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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1990년대 중반까지 극장의 최대 화두는 설과 추석 명절에 대박 흥행작 상영 여부였다. 당시만 해도 극장은 상영관이 1개뿐인 단관(單館) 시절이었다. 1천 석이 넘는 극장들도 여럿 있었다. 한 극장에서 추석 연휴에 성룡이 주인공인 영화를 상영하면 매표소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섰고, 할리우드 대작 간판이 내걸리면 흥행 보증 수표였다. 극장 관계자의 역량은 관객이 몰릴 만한 외국 영화를 얼마나 빨리 선점(先占)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흥행작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표까지 각오해야 했다.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찬밥 신세였다. 스크린쿼터, 즉 한국 영화 의무 상영일에 맞춰 마지못해 영사기에 필름을 걸 뿐 홍보도, 기대도 없었다. 어쩌다가 흥행작이 걸리면 극장 입장에선 의무 상영일수도 채우고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간간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는 끼워 팔기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서편제'(1993년)가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박스오피스 집계가 불확실해 전국 단위 관객 수는 신뢰할 만한 숫자가 되지 못했다. '타이타닉'(1997)이 서울 관객 200만 명을 넘겨 외화 신기록을 세우자 역시 한국 영화는 한계가 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쉬리'(1999)가 한국 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전국 621만 명 기록을 세웠다. 이후 '천만 영화' 수식어가 붙는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쉬리'와 함께 한국 영화의 전기(轉機)가 된 사건이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영화 시장 개방 요구에 따라 의무 상영일을 146일에서 73일로 절반 줄였다. 영화계 반대는 거셌다. 한국 영화의 식민지화를 우려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멀티플렉스의 확장과 함께 시장 자체가 급격히 커졌다. 대기업들이 영화 산업에 뛰어들었고 작품 수도 급증했다. 약 20년 만에 한국 영화계는 다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이 대표적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스크린쿼터제를 지목해서다. 영화계가 직면한 상황이 2006년과 전혀 달라 결과에 대한 어설픈 예측조차 쉽지 않다. 스크린쿼터 무용론도 있지만 섣부른 철폐는 위험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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