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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이희대] 해법은 '생활인구'에 있다

이희대 경북부 부장
이희대 경북부 부장

지방 소멸은 더 이상 통계가 아닌 현실이다. 현재 전국 89개 인구 감소 지역이 소멸 위기라는 불안한 경고를 받고 있다. 대구 군위군은 평균연령 59세,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화와 함께 '소멸 위험 1위'라는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위에서 '생활인구'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반전이 펼쳐지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누적될 때, 전혀 다른 사고의 틀로 전환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 인구정책이 바로 그 변곡점에 서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개념은 바로 '생활인구'다. 정부의 인구정책도 생활인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4년부터 생활인구 기반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해 국고보조금, 생활 SOC 투자 우선순위에 반영하기 시작했고 2026년부터 보통교부세 산정 기준에 생활인구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경상북도도 최근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생활인구 활성화 사업에 114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경북도는 ▷시군을 대상으로 유휴 자원 활용 지역 활력 ▷소규모 마을 활성화 ▷1시군 1생활인구 특화 ▷경북형 작은 정원 조성 분야 공모 등을 통해 대상 사업을 확정했다.

생활인구는 근무, 통학, 관광, 휴양 등의 목적으로 일정 시간(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지역에 체류하는 인구를 의미한다. 군위군의 경우 주민등록인구는 2만2천여 명에 불과하지만, 생활인구는 2024년 3분기 기준 25만 명에 달한다. 이는 주민등록인구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군위의 생활인구 증가는 몇 가지 뚜렷한 환경 변화에서 비롯됐다.

그중 2023년 대구시로의 편입은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대구권 광역교통망 연계, 도시민 접근성 향상은 곧바로 체류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대구~군위 급행버스 노선 개통은 대구 생활권 형성을 가속화했고, 군위 전통시장과 관광지에는 도시민이 몰려들고 있다. 전국 최다 수준인 골프장은 중장년 여가 인구의 안정적 유입을 견인하고 있다.

생활인구가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유발하는 경제효과에 있다. 카드 사용액을 예로 살펴보면 체류인구의 1인당 카드 사용액은 11만원, 체류인구의 카드 사용 비중은 73.3%로, 등록인구 26.7%보다 비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정주인구'에서 '생활인구'로 전환할 수 있는 근거이자, 가능성이 되었다.

군위군도 이 가능성에 주목해 생활인구의 잠재력을 토대로 인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 중이다. 단기적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180홀) 파크골프장 조성을 비롯한 레저 관광 활성화 ▷공공 임대형 주택단지 조성 ▷시장 활성화와 관광자원 고도화를 통해 생활인구 기반을 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30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대구경북신공항 ▷대구 도심 군부대 이전 ▷스카이시티 개발 등이 추진되면 군위는 개발 기간 동안에는 생활인구의 폭발적 증가, 개발 완료 후에는 정주인구의 지속적인 증가가 예상된다.

군위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인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움직임이다. '누가 이 지역에 살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찾고, 머무르고, 소비하느냐'가 지방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지방은 살아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바로미터가 생활인구다.

지금 우리는 군위군 사례를 통해 지방 인구정책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목격하고 있다. 지방의 미래는,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곳을 '살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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