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여론의 반발에 한발 물러서며 대법관 100명 증원 및 민간인 대법관 임명 방침을 철회했지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일부에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국민에게 굴복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나 완전한 착각이다. 사법부 장악 음모를 숨기기 위한 대국민용 눈속임일 뿐이다.
대법관 30명 증원 방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 것이 중요하다.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주당이 집권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566명의 법조인과 법학교수 중에서 신규 대법관 17명을 임명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되고 사법부를 정권의 지배 하에 둘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대법관 수를 30명 이상으로 증원하겠다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써먹었던 단골 메뉴다. 2004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은 20명인 대법관을 32명으로 늘리면서 '혁명적인' 측근들을 임명해 9년 동안 정부에 반대하는 판결을 0건으로 만들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권도 헌법재판관을 8명에서 15명으로 늘린 뒤 집권 피데스당 단독으로 신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해 헌재를 장악했다. 대법관 30명 증원이 현실화 되면 민주주의를 파괴한 권위주의 정권 목록에 우리도 이름을 올리게 된다.
민주당의 사법부 협박과 대법관 증원을 통한 사법부 장악 시도는 5공 군사정권 때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윤호중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사법부 법봉 보다 입법부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하겠다"고 했다. 사법부에 대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함으로써 법치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법적 권한을 이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선출된 권력이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발상이 놀랍고, 사법부 독립을 토대로 하는 법치주의와 헌정질서의 근본을 위협하는 중대 사태가 아닐 수 없다.탄핵제도와 함께 허술한 사법부 독립 보장 제도가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숨겨진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만 있으면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관 탄핵소추가 가능한 우리와 달리 프랑스는 의회가 판사와 검사를 탄핵할 수 없다.
대통령이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여할 수 없고 이를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의 권한으로 하고 있다. 법원조직법도 함부로 개정하지 못한다. 상원과 하원의 특별다수결로 의결되어야 하고 반드시 헌법위원회의 사전 위헌심사를 거쳐야 한다. 법관은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승진 또는 전보되지 않는다는'법관 부동성(不動性)의 원칙'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사법권 독립 보장을 위한 이중삼중의 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의 지배'가 아니다. 다수의 정치적 지배를 법치국가적으로 제한하는 '자유민주주의'이다. 문제는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 원리도 정교한 법과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선의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사법권 독립 보장을 위한 우리 헌법과 프랑스 헌법의 근본적 차이가 의미하는 바도 법과 제도의 중요성이다. 카이사르는 "악행의 모든 사례는 본래 선한 출발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강력하고 근대적인 국가는 법치주의나 책임정부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을 때, 보다 완벽한 폭정체제가 될 수 있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경고한다.
고도로 발달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져올 수도 있고 정치적 쇠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치집단 간의 타협 부재와 적대적 접근 방식에 따른 양극화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지배했고,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억제할 사법기관의 역량 부재가 나치 독일로 가는 지옥문을 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가 피어 났지만 더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 불꽃이 꺼져 갔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민주주의의 운명을 국민 스스로가 결정하는 시간이다. 가장 큰 위협은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역사적 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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