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장우영] 부정선거론을 청산하자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비상계엄 정국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과 조기 대통령선거로 일단락되었다. 국가의 위기는 수습된 반면 민주주의의 위기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민주주의는 규칙과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를 확립하는데 1987년까지 40년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러나 허위 정보와 비상계엄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망가뜨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부정선거론과 그 망령에 사로잡힌 윤석열 전 대통령의 확증편향이었다.

대선이 치러지는 가운데에도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 특히 사전투표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는 주장은 유권자의 의혹을 부추겼다. 사전투표 조작설은 특히 보수층과 영남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소구하고 있다.

지난 5월 29일과 30일 전국 사전투표율은 34.74%를 기록했다. 반면 꼴찌를 기록한 대구(25.63%)와 경북(31.52%)의 사전투표율은 전남(56.50%)과 광주(52.12%)에 크게 뒤졌다. 이처럼 사전투표 조작설은 유권자의 투표 의욕을 저해하며 선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튜브는 부정선거론이 종횡무진으로 널뛰는 현장이다. 필자의 분석을 빌면 10년 이상 동안 수백 개의 채널에서 셀 수 없는 정도로 부정선거론 동영상이 확산되었다. 그 주역은 대개 보수 채널들로 부정선거론과 사전투표 조작설을 진실로 둔갑시켰다.

특히 수십만명에서 백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파워 유튜버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들은 "계엄 당일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90여 명이 체포돼 미군부대 시설에서 조사받고 부정선거에 대해 자백했다"거나 "국제 부정선거감시단이 입국해서 활동 중"이라는 등 황당무개한 언설을 사실인 양 쏟아낸다.

부정선거론의 핵심은 '실체적 부정선거-투개표 결과 조작'과 '잠재적 위협-통합선거인 명부 해킹'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부정선거론은 사실일까? 부정선거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적 모의 없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선호를 가진 선관위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조작에 가담한다는 상상 그 자체가 음모론이다.

더욱이 30만명에 이르는 투개표 업무 종사자와 정당 참관인도 조작을 눈감아야 한다. 그리고 잠재적 위협은 그 실체가 확인된 바 없는 가정에 불과하다. 더욱이 투개표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킹을 통한 결과 조작은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이다.

부정선거론은 시스템과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저급한 정치문화에서 발생한 문제다. 그 기원은 2002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누리당은 노무현 후보의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전자개표기 작동에 상당한 부정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80개 개표구에서 3,000명의 공무원이 1,104만장의 투표용지를 재검표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에 불복한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회창 후보는 88표 늘었고 노무현 후보는 816표 줄어든 정도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로부터 선거 불복의 역사가 개막되었다는 것이다. 양당의 골수 지지자들이 번갈아가며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패배를 부정했다. 그리고 부정선거론의 허구는 진실로 둔갑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의심하며 투표에 불참하는 것은 제 살 깎아 먹는 어리석음이다. 사흘을 투표하는 쪽과 하루를 투표하는 쪽 중 누가 더 유리할지 자명하다. 다만 부정선거론 문제를 정치인과 유권자 탓 만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동안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가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더불어 내부의 인사 비리와 치외법권적 관행이 여론을 악화시켰다.

따라서 선거관리 부실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도 사전투표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가령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 기간에 대한 의혹이 크다면 그 기간을 없앨 수도 있다. 즉 사흘간 내리 투표를 진행하면 선거 관리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행정과 예산상의 애로가 있겠지만 그것은 마땅히 지불해야 할 민주주의 비용이다.

합리적인 대안을 추구하여 절차적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 국민 통합의 첩경이다. 그 첫걸음이 부정선거론과 같은 탈진실(post-truth)을 청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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