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단지와 270m 떨어진 야산에 '쾅'…대형 참사 피했다

포항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
밭일 하던 농민들 필사적 대피…기체 휘청거리다 바닥에 충돌
중고 미군기 도입 30년째 사고…"평소와 달라" 장비 노후 등 의심

2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신정리 해군 초계기 추락 현장에 잔해가 흩어져 있는 가운데 군과 소방 당국이 현장을 수습 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신정리 해군 초계기 추락 현장에 잔해가 흩어져 있는 가운데 군과 소방 당국이 현장을 수습 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신정리 해군 초계기 추락 현장에 유족들이 군 관계자와 도착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9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해군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추락 지점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 민가와 인접한 곳으로 확인됐다.

해군은 초계기 추락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맑은 날씨 등 기상 상황을 고려할 때 기체 결함, 장비 노후화 등에 따른 사고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마터면 대형사고"

해군이 운용하는 초계기는 이날 오후 1시 49분쯤 포항시 남구 동해면 신정리 야산에 추락했다. 사고 현장 인근 농가에서 만난 김병현(62) 씨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당시 밭일을 잠시 쉬고 밥을 먹고 있었던 김 씨는 일행이 지르는 소리에 하늘을 쳐다봤다가 주저앉을 뻔했다.

항공기는 밭과 가까이 있는 해군항공사령부 포항비행장 쪽에서 날아와 이착륙 훈련을 하는 게 김 씨가 늘 보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초계기는 그 궤도를 벗어나 두 차례 선회하더니 맞은편에서 밭쪽으로 내리꽂히듯 추락했다.

김 씨는 일행 2명과 함께 혼신을 다해 도망쳤지만 빠져나갈 수 있을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죽음이 코앞에 왔다고 생각한 순간 항공기 좌우 날개가 위아래로 여러 차례 움직인 후에 동체가 거꾸로 휙 돌아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지며 바닥과 충돌했다.

항공기가 추락한 야산에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었고, 소나무 숲과 승마장 등이 있었다. 사고 이후 항공기가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화재에 뒤덮여 검은 연기를 내뿜었지만 민가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더군다나 추락 지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70m 떨어진 곳에 688가구가 사는 아파트 대단지가 위치해 있었다. 아파트단지 주변에는 동해면 소재지가 있다. 주민들은 아파트단지나 면소지 민가에 추락했더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사고지점 주변은 대단지 아파트가 있고, 민가도 적지 않다. 평소 이착륙 훈련을 자주 했던 조종사라면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항공기가 선회를 했던 것이나 마지막 움직임으로 보면 인명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종사가 끝까지 노력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도 "항공기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더니 이상한 굉음을 내고 흔들리다 갑자기 추락하며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며 "항공기 추락 순간에 이쪽으로 추락하면 우린 다 죽는구나 생각했다. 살았다는 게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고 전했다.

해군 측은 조종사가 민가를 회피해 사고 지점으로 향했는지 향후 확인할 예정이다.

해군 관계자는 "사고 전 교신 내용 등은 아직 파악된 것은 없다"며 "추후 조사를 통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9일 오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신정리 해군 초계기 추락 현장에 유족들이 군 관계자와 도착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추락사고 원인은?

이날 추락한 해군 초계기는 미군이 운용하던 대잠초계기를 1995년 중고로 도입해 한국 실정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해상초계기는 P-3C와 P-3CK로 나뉘는 데 이번 사고 기종은 P-3CK다. 사고가 난 기종은 국내에 모두 8대가 있으며 포항과 제주 해군이 운용하고 있다. 해당 해상초계기는 한반도 3면의 바다를 누비며 잠수함 킬러 역할을 한다. 다만 전투기처럼 자력으로 탈출하는 기능은 없다.

사고가 난 해상초계기는 그동안 해군의 주요 전력으로 운용했지만 지난해 중순부터 최신예 해상초계기 P-8A(포세이돈) 6대가 순차적으로 들어오면서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해당 해상초계기는 2015년에 무사고 20년 달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입 30년째가 되는 올해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노후화에 따른 기체 결함이 사고의 원인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사고 초계기가 추락하기 직전 급격하게 회전하면서 굉음을 냈다는 등 비행기가 평소와 무언가 달랐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이어지면서 기체 결함이나 다른 이상 등이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고 당시 날씨가 맑았다는 점에서도 장비 노후화 원인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해군은 사고 직후 운용 중인 모든 P-3 기종의 비행 훈련을 중단시켰다.

해군 관계자는 "참모차장을 주관으로 사고대책 본부를 구성해 사고 원인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P-3 훈련은 중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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