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송지혜] 우회 중입니다, 더 나은 길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우리 몸의 혈관은 막히면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만든다. 혈류가 끊기면 생명이 위태롭기에, 몸은 본능적으로 우회로를 만든다고 한다. 곁순환(collateral circulation)이라는 현상으로, 혈관이 막히면 그 주변의 작은 혈관들이 새로 자라나거나 하면서 혈액을 공급하는 우회 경로를 형성하게 된다.

나는 의사로부터 이 사실을 들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은 생존이 위협받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내는구나!'. 정작 우리는 내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지만, 내 혈관은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묵묵히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다 길이 막히면, 종종 주저앉거나, 아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왜 성숙한 정신을 가진 인간은, 세포보다도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왜 '돌아가는 길' 하나를 생각해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몇 해 전, 우리는 오래도록 지켜온 삶이 바뀌었던 시기를 겪었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해외교류를 지속해오며 수년 간 준비한 공연이 전세계가 락다운(lockdown)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 문화는 발전하고 더 나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돌아보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이었다.

우회한다는 건 좌절이나 실패의 다음 순서가 아니다. 기존의 길이 막혔을 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겠다는 용기이자 더 나은 경로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내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앞에 사고가 나거나 길이 막히면 즉각 우회로를 찾아 재경로를 설정한다. 현재의 상황을 최적으로 반영한 가장 최신의 기술이자 현명한 판단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우회로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 어떤 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막히고, 어떤 상황은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자주, 그것이 나의 부족 때문이라 여기고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회로를 선택했다는 건, 내가 더 나은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우회로를 선택할 때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잘못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방향을 찾아 나선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괜찮다. 내가 걸어온 길이 충분히 빛났기에, 더 빛날 수 있는 방향으로 지금 길이 바뀐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길이라면…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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