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정우태] 답은 늘 현장에 있다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오늘 사무실 정리했습니다."

며칠 전 퇴근길 수화기 너머 들리는 침울한 목소리에 마음이 내려앉았다. 지역 내 한 경제인 모임이 사실상 운영을 멈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건실한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들이 모여 공부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좋은 취지의 단체였다. 사무실은 가끔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장소였다. 분기별로 세미나를 개최해 글로벌 트렌드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역할도 해 왔다. 개인적으로 짧지 않은 시간 실무자와 정을 쌓은 터라 아쉬운 마음은 더 컸다.

사정은 이랬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회비를 미납하는 기업이 늘었고, 교류도 점차 뜸해지면서 단체 운영을 지속할 동력을 잃은 것이다.

특히 자생력을 갖춘 기업이 줄었다. 수익이 좋을 때는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 모임에 참석할 작은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다음 날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역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업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피봇(사업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는 모 스타트업 대표의 푸념이었다. 2차전지 호황기에 리사이클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생생한데, 이후 배터리 업계 전체가 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던 신생기업이 넘어야 할 규제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기술 상용화는 미뤄지고 투자자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자금난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만간 소주 한잔 하자는 말 끝에 씁쓸한 기운이 역력했다.

현재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바닥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인 대구에 드리운 그림자가 유난히 짙게 느껴진다.

가끔 취재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너무 내 힘든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이다. 타인의 말을 듣고 글로 전달하는 것이 주 업무인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귀담아듣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새로운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미리 살펴본 공약집에 단연 경제 전략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경제성장률과 고용, 소득, 물가 등 다양한 지표에 따라 정책을 평가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 분명하다. 성공적인 리더십의 첫 단계는 '경청'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미국의 경제를 이끄는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관할 지역의 경제 상황을 조사·분석한 '베이지북'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발간한다. 보고서에는 기업인과 소상공인의 발언이 익명으로 수록돼 있다. 데이터로 파악하기 힘든 현장 상황을 반영하기 위함이다. 연준 위원들은 각 지역을 찾아 간담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청취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취임 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여러 차례 비판하면서도 독립된 기관으로 연준을 존중하는 모습이다. 일방향이 아닌 상호 소통하는 자세로 쌓은 신뢰가 연준의 지위와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통계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인의 의견과 지역사회의 기류, 시장의 신호를 실제로 듣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가장 낮은 곳부터 살피는 세심함을 겸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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