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이종철] 국민이 준 결과를 받아들고도…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대선 중반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추격하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표 차가 9%로 좁혀졌을 때다. 그전 무려 22% 차에서. 이 여세를 몰아 격차를 더 좁히고 끝내 뒤집어 승리할 수 있을까? 선거운동을 하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잠시 생각하더니 현 판세에 대해 '태평양 전쟁'을 예로 들겠다면서 대답했다. 설명인즉슨 다음과 같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이긴 것은 '핵무기 투하'였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핵무기를 쏠 수는 없다. 대신 미국은 일본에 가까운 동아시아 섬들을 정복하였다. 그 섬 중 북마리아나 제도에 소속된 티니안 섬에서 핵무기를 실은 폭격기가 이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김문수 후보이고 일본이 이재명 후보라고 치자. 이재명 후보는 '내란 헌정 파괴 세력 응징'이라는, '진주만 공습' 같은 무자비한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가 이를 무력화시키려면 선제적으로, 비상계엄과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라는 '핵무기'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의 미국 본토에서 핵무기를 쏠 수 없으니 동아시아 섬들인 '무당층'을 잡아야 했다. 그렇게 '민주주의의 정당성'과 무당층의 매개를 통해 이재명 후보를 공격했다면 확실히 승리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핵무기를 장착하지 못하고 무당층을 공략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의 각종 비리 의혹을 공격하고 김문수 후보가 가진 많은 장점들을 최대한 어필한다 해도, 이는 '군비 증강'은 될 수 있으나 핵무기는 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핵무기급 무자비한 공격을 이길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김문수 후보는 미국이 일본에 승리했듯이, 먼저 확실한 승리를 위한 핵무기를 가져야 했다. 다음으로 이를 무당층을 통해 과시해야 했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본토를 찔러야 하는데 본토를 찌르려면 무당층이라는 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는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위 두 가지 결정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은 일본을 이겼는데 김문수 후보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결국 이재명 후보를 꺾지 못한다.

듣고 보니 참 신묘한 비유였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눈에도 보이는 이 상황이 과연 실제 현실일까? 얘기를 들으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 중학생 아이는 나중에 김문수 후보를 만나면 '탄핵 선거'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문수 후보가 인근에 온다는 말에 유세장에 가서 그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는데 학원에 가야 해서 못 갔다고 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중학교 2학년 이 학생의 말은 실제 현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학생이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을 정확히 맞추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 득표율도 1% 정도 차이가 났다.

이미 국민들은 그간 많은 비리 혐의와 비호감으로 이재명 후보를 싫어한다. 그런데 비상계엄 때문에 국민의힘을 더 싫어하고 있다. 전세를 뒤집고 확실한 승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중학교 2학년도 간파하는 선거의 판세를 알지 못했다. 국민 일반의 상식이 너무나 명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애써 무시했다. 참으로 '아둔함'이거나 '오만함' 그 이상의 표현이 없다.

대선의 구조는 명확했다. 언제나 선거는 어렵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번 선거만큼 '승리의 공식'이 명확했던 적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훨씬 쉬운 선거가 될 수도 있었다.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던 이재명 후보는 대한민국 역대 대선에서 본 적이 없는 심각한 흠결의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비호감도는 그에 대한 지지율보다 항상 높았다.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성하지 않는 국민의힘 후보를 뽑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매우 어려운 선거를 했고 매우 어려운 선택에 내몰린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죄를 지은 것도 모자라 국민을 이렇게 힘들게 했고, 승리의 공식을 스스로 걷어찼다.

대선 후 '이재명 민주당'은 예상했던 폭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패배한 국민의힘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패배했는지도 모른 채 퇴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준 결과를 받아 들고도, 무참히 패배하고도, 다만 국민의 상식으로 돌아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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