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대학 시절, 노래방에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선배들이 꼭 있었다. 보이시한 비주얼과 목소리를 가진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라는 노래였는데,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쯤에 발표된 곡이어서 세대 공감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아련한 감성에 흠뻑 젖어 노래하는 선배를 보며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적잖이 난감했다. 락발라드의 멜로디가 낯설었고 가사 전달이 전혀 되질 않아서였다. 저 선배는 왜 저렇게 심취해 있는 거지. 괜히 심각하게 멋 부리는 척한다고 지레 넘겨짚어 버렸다.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간혹 누군가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지만, 내 머릿속 플레이 리스트에서 이미 '와 닿지' 않는 것으로 각인된 곡이었으므로 기억에서 지웠다.
그러다가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꺼내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이 노래가 다시 소환되었다.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현재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꽤 두꺼운 동화였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직업 상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 독자들을 겨냥한 책이니 '쉽다'는 인식을 갖고서 항상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갔었다. 그런데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 바로 이 '모모'였다. 이상하게 읽을 때마다 어려워서 몇 번이나 처음으로 되돌아갔던 책인데, 이제 와 다시 들추니 과거엔 보이지 않았던 재미와 숨은 진리들이 깨알처럼 박혀 있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도둑맞고 있어요'
내가 최근에 다시 만난 '모모'에게서 전해 받은 메시지는 이거였다. 작가의 시선에서 책을 그저 책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파헤치며 분석하고 읽었을 때 미처 들리지 않았던 속삭임이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축하고 소모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고생하면 언젠가는 잘 되겠지, 나중에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라며. 사실 우리에겐 현재만 있는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란 영원히 오지 않을 '그 무엇'일 뿐이다. 그저 현재라는 시간을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사용하기를 포기했으니까 자꾸만 쫓기는 느낌에 오지 않은 내일이 한없이 불안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가사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스며드는 정도가 아니라 후벼 파이다가 도려 나갈 지경이다. 시간은 대체 나에게 뭘 한 거야, 가 아니라 난 도대체 시간에게 무슨 짓을 해 버린 거야, 가 맞았다. 젠장.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시간이라는 어여쁨을 못 보는 맹인이라서 자꾸만 늙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 것인가. 구멍 난 바가지로 퍼 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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