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법관 증원 속도전, 李 대통령 후보 때 생각과 맞지 않다

'대법관 증원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가운데 대법원·여당의 강한 반발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면서 속도전(速度戰)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했던 사법 개혁에 대한 속도 조절 언급도 재조명되면서 법안 강행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법사위는 4일 14명인 대법관 수를 매년 4명씩 4년간 16명 증원해 총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일 대법관 증원과 관련, 대법원의 본래 기능과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뭔지 국회에 계속 설명하고 논의하고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가지 얽혀 있고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가 걸린 문제인 만큼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뜻도 내비쳤다.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도 전날 법사위 소위에서 '대법관 증원은 사법제도 근간을 바꾸는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간에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를 새로 임명할 경우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소위에서 "대통령 취임 첫날 간단히 논의해서 통과시킬 법안이 아니다"고 반발하며 의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退場)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 중에서도 "대통령 취임식 직후에 민감한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키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동의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또 "통합보다는 분열, 숙의보다는 속도, 품격보다는 절차 무시로 읽힐 수 있다"며 "시간을 좀 더 갖고 다양한 논의와 숙의를 거쳐 추진하자"는 요청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기자회견에서 했던 '사법 개혁이 중요하지만 급하게 처리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소환돼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 여부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 사법 개혁, 검찰 개혁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조기에 주력해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이 너무 분열되고 대립·갈등을 겪고 있다. 급하지 않은 갈등적 사안에 집중하면 에너지를 모으기 쉽지 않다. 갈등적 요소가 적은, 시급한 국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것에 우선 집중하겠다. 사법 개혁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대법관 증원 일방 추진은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강조한 협치·소통·통합의 메시지와도 배치(背馳)된다. 취임하자마자 대법관 증원법부터 강행한 것은 이 대통령에 불리한 판결을 막기 위한 '방탄(防彈)'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이 처리되면 이 대통령은 임기 중 증원 대법관 16명을 임명하고 현 대법관 중 10명을 교체할 수 있다. 30명 중 무려 26명이다. 대통령의 형사 재판 중지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허위사실공표죄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있어 언제든 통과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이들 법안에 대한 입법 추진을 중단하고 법조계 의견 수렴, 여야 합의 처리, 공청회 등을 통한 사법제도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대법관 증원이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할 일인가"라는 국민의 비판과 우려에 귀를 닫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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