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김봄이] 유권자 눈을 가리는 '깜깜이 기간'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대구 수성구 대구여고 체육관에 마련된 범어1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대구 수성구 대구여고 체육관에 마련된 범어1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가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김봄이 디지털국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6일간 '여론조사' 기사가 계속해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라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며칠이 지난 여론조사 기사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 엿새 전부터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해 보도할 수 없다. 이 조항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 내용 공개가 투표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여론조사 공표가 영향을 미쳐 유권자들이 사표(死票)를 우려해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추종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나 약자 응원 심리로 인해 약체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게 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공표 금지의 실효성은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온라인을 통해 쉽고 빠르게 방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지금은 이 같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의 취지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깜깜이 기간에 답답한 유권자들은 SNS나 커뮤니티 등에 떠도는 정보에 의존하면서, 부작용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선 기간에는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후보자들의 지지율 변동이 큰 가운데 깜깜이 기간에 돌입해 유권자들의 궁금증이 더욱 컸다. 선거 막판이면 어김없이 터지는 각종 네거티브도 여론에 어떻게 반영이 됐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여성 신체와 관련한 성폭력'을 묘사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거세게 비판을 받았지만, 이 또한 여론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상당수 국가들이 공표 금지 기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공표 금지 기간을 아예 두지 않거나 선거 전날 하루 정도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여론조사협회가 2023년 펴낸 여론조사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공표 기간 규제가 없는 국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었고, 프랑스, 포르투갈, 이란, 쿠웨이트 등은 선거 당일에만 공표를 막고 있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체코, 러시아, 케냐, 루마니아 등은 선거 전 2~5일간 금지하고 있어 우리보다 금지 기간이 짧고, 벨기에, 이탈리아, 그리스, 태국 등은 한국보다 금지 기간이 길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공표·보도 금지 기간을 규정하기보다 이를 폐지해 유권자의 판단·선택을 돕는 참고 자료로서의 유용성을 인정하려는 것"이라며 공표 금지 기간을 현행 6일에서 2일로 단축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보다 먼저 2016년에도 선관위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단축하는 법안을 냈다. 하지만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는 민주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표는 유권자들이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을 내리는 행위다. 정보가 차단되고 부정확한 정보가 유통되면서 부작용이 더욱 크다면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은 폐지되거나 축소돼야 하는 것이 옳다. 깜깜이 기간이 유권자들의 눈을 가리는 기간이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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