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이재명 대통령 인사는 다 옳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국무총리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노무현 정부)을 국가정보원장에 지명했다. 김민석 의원은 1985년 5월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의 주동자다. '그가 미국 비자는 받을 수 있나'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미국과 통상, 관세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대한민국 행정부의 제2인자이자 대통령을 보좌해 정부 운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이 과연 이 대통령이 내건 실용일까?
이종석 국정원장 지명자는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한국 외교 안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2018년 "(햇볕 정책 실패라기 보다) 미국이 우리의 포용 정책을 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제주포럼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은 절대 왕조 국가의 군주 특성과 현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일-북러중 블록화가 심화된 시점에 이종석 국정원장 지명이 과연 실용과 국익에 도움이 되나? 한미 동맹간 신뢰 균열과 외교·안보·통상에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에서 견제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의 첫 인선을 평가해달라'는 라디오 방송 진행자의 질문에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인사는 다 옳습니다"라고 말했다.
▶ 황제에게 가감 없이 직언한 배구
중국 당 태종(재위 626-649)이 권좌에 올랐을 때 관리들 사이에서는 뇌물 수수가 만연했다. 앞선 왕조인 수나라 양제 때부터 내려온 악폐가 새 왕조에서도 근절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나라는 수나라 무장 출신인 당 고조 이연(李淵:566년~635년)이 형식상 황제 자리를 선양(禪讓) 받은(강제로 빼앗은) 나라이므로 신하들 상당수는 수나라 시절 관리였고, 수나라 때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뇌물수수가 근절되지 않자 당 태종은 '덫'을 놓았다. 사람을 시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게 하고, 그 뇌물을 받은 사람을 색출하게 한 것이다. 어느 신하가 비단 한 필을 받았다. 태종은 일벌백계(一罰百戒) 차원에서 그를 처형하려고 했다. 이때 호부상서(戶部尙書) 배구(裵矩)가 반대의견을 강력하게 폈다.
"관리가 뇌물을 받은 것은 엄히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폐하가 속임수를 써서 뇌물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 벌하는 것으로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란다'는 성현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이 직언을 들은 당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배구를 크게 칭찬했다.
▶ 간신 배구가 충신으로 변한 까닭
배구는 당나라 전신인 수나라의 신하였다. 당시 그는 시종일관 수 양제가 듣기 좋아하는 소리로 비위를 맞추는 간신배였다. 그랬던 배구가 당나라 태종의 신하가 되자 어쩐 일인지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가 개과천선(改過遷善)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나라 양제는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은 소리를 좋아하지만, 당 태종 이세민은 귀에 거슬리더라도 나라에 이로운 바른 말을 좋아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군주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냐에 따라 간신도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사법제도 일방적 변경 추진 침묵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겠다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원조직법이 시행되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대법원장 포함 대법관 10명을 교체하고, 늘어나는 대법관 16명 등 총 26명을 임명하게 된다.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헌법상 '대법원장 제청' 절차가 있지만,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원치 않는 인사를 제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이유로 1인당 연간 3천 건에 달하는 과중한 업무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상고심 전담 재판부'를 조직하면 될 일이다. 대법관 증원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대법원 구성을 강제 변경하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 대법원 및 여야, 학계와 깊은 논의도 없었다. 민주주의 국가, 법치국가에서 사법 제도의 일방적 변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에서는 자중하자는 목소리가 없다.
▶간신·충신 양산은 군주에 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을 추구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잠재성장률을 3%로 올리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개혁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성장과 투자를 막는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전국민에게 25만원을 풀거나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의료개혁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범위와 방식을 제한하고, 하도급 노동자가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허용하는 '노란 봉투법',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고, 이사를 선출할 때 소액주주의 입김을 더 많이 반영하는 '집중 투표제도'를 활성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고집하고 있다. 모두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 시키는 법안들이다. 전국민 25만원 지급도 추진할 태세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이를 자제하자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뜻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의 판단과 말이 모두 옳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싫어하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정부에 충신이 많아질 것인지, 간신배가 득실거릴지는 이 대통령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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