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박성현] 대선이 끝난 뒤에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대선이 끝나니 국민의힘이 또 '영남당'으로 쪼그라들었다는 목소리가 쇄도한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강원에서만 이재명 대통령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TK에서는 67.24%의 득표율을 올리며 24.41%를 기록한 이재명 대통령을 크게 앞섰다.

절대적인 수치의 TK 득표율이 있었기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의 과반 득표율을 저지할 수 있었고, 야당으로서 '견제와 감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을 마련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김문수 후보가 40% 넘는 득표율을 올린 것을 두고는 의외란 평가가 나온다.

사실 TK 등 영남권이 없었다면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인 100석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국민의힘 의석 107석(당시 108석) 중 비례대표 18석을 제하면 지역구 의석은 89석. 이 중 TK는 28%(25석), PK를 포함한 영남권은 65%(58석)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TK는 늘 '원흉'으로 꼽힌다. 대선 내내 "TK에서 득표율 80%를 넘겨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던 이들이 선거가 끝나자 "우리 당이 TK 정서에만 매몰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다.

최근 열렸던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TK 지역구 의원들과 수도권 등 비영남권 지역구 의원들은 현안별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계파를 떠나 내년 지방선거를 두고 각자의 당리당략이 치열한 탓이다. 이 과정에서 TK는 변화를 거부하는, 구태 정치의 본산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틀렸다. TK는 그 누구보다 보수정당의 재건을 염원하는 곳이다. 우리가 지지하는 정당을 속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고, 더욱 열렬히 지지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TK가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은 구태 정치를 계속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시금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TK 지역구 의원들에게 있다. 공천만 받아도 당선될 수 있는 안정적인 텃밭을 확보하고도 개혁에 나서지 않는, 무사안일한 모습이 당을 정체하게끔 만들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도 TK 의원 대다수는 확실한 비전이나 공약을 내놓기보다 "이기는 사람 우리 편"이라는 생각으로 판세를 관망했다.

국민의힘이 영남당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다시 대한민국 대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TK 의원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누구보다도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당을 주도적으로 바꿔 나갈 임무는 젊은 수도권 정치인의 것이 아니라 힘 있는 TK 중진 의원들의 몫이다.

선거가 끝나자 더불어민주당은 벌써부터 TK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골몰하고 있다. 3년 만에 잡은 정권을 무기로 어떻게든 '보수의 요새'를 깨부숴 보겠다는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존재로 PK 민심이 변했듯 이재명 대통령의 등장으로 TK에도 씨앗이 심겼고, 머지않아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을 향한 TK 시도민의 인내심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의힘이 좋아서 찍었다는 사람은 잘 없다.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가 나왔다면 오히려 더 많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시가 급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임기는 3년이었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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