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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황영은] 아Q의 정신 승리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중국 청조 말기 신해혁명 전후의 사회를 아퀘이, 줄여서 '아Q'라는 시골 날품팔이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소설이 있다. 작가 루쉰의 대표작인 '아Q정전'이 바로 그것이다. 썩어빠진 조국을 개혁하기 위해서 잠들어 있는 민중의 활력을 일깨우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루쉰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환상에 머물러 살아가는 당시 중국인들의 자기 위안적인 모습을 이 작품으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인의 자기 검열은 세계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외모부터 시작해 청결과 건강, 외국어 및 다방면의 지식 습득과 또 정신을 수양하는 일까지, 한국인의 자기 관리는 한류를 불러일으킨 주요 원인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그건, 경쟁력 높은 자연자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좁은 땅덩이 안에서 또 오래전부터 잦은 외세의 침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종 진화한 생존 전략쯤으로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어쨌든 노력하는 삶은 안팎으로의 발전을 가져오니까 긍정적이라고 치자.

아롱이다롱이라고, 정체하거나 역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 한 유형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류'로 묶어보겠다. 가치관 차이로 인한 친구와의 다툼, 타인에게 함부로 내뱉은 비하 발언, 경제적 지위가 높은 지인을 향한 질투, 오래된 경쟁자와 겨룬 레이스에서의 참패 등등은 살아가며 겪어봄 직한 일들인데, 사실 이런 경우에 솟구치는 감정들은 누구라도 다스리기 어렵다. 인정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자존심의 추락과 패배감, 누가 봐도 명백한 자신의 과오 같은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쉽게 대처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정신 승리'이다. 시쳇말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자기 위로의 방식이다. 이건 이러했기 때문에 내 잘못은 없어, 상대가 나빴으니까 그런 소리 들어서 마땅해, 컨디션이 별로였으므로 경기에서 진 거야, 라는 식의 자기 위안은 아Q의 정신 승리법과 맞닿아 있다. 구타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는 아Q는 이를 간단한 정신 조작을 통해 승리로 변화시킨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이유 없이 무차별 폭력을 가한 상대보다 자기가 훨씬 더 높은 위치에 놓여있다고 여기며 '자식 놈에게 맞은 셈 치자'라는 빠른 생각 전환이라든가, 누군가에게 당한 고통과 패배를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승리자가 되는 형식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둥근 지름만큼의 하늘을 볼 수밖에 없다. 그 작은 원 밖의 큰 세상을 보는 방법은 '인정하는 태도'이다. 중요한 건 얄팍한 '졌잘싸'가 아니라 두터운 '인정'이라는 말이다. 좁은 가치관, 그릇된 언행, 잘 사는 누군가를 향한 시기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표정도 밝고 뇌도 맑은 정신 승리자 대신 부끄러움을 알고 인정할 줄 아는 패배자가 되는 일이, 2025년 한류를 선도하는 사람들의 앞서가는 자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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