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이정식] 국가경쟁력 27위, 숫자를 넘어 시스템 전환의 계기로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2025년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가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9개국 중 27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역대 최고 순위였던 20위에서 7계단 하락한 결과다. 대만(6위), 중국(16위) 등 주요 아시아 경쟁국이 상위권을 지키는 상황에서 이번 순위 하락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숫자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구조적 신호와 개선 방향을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IMD 국가경쟁력 평가는 매년 전 세계 69개국을 대상으로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기업 효율성, 인프라 등 4대 영역에 걸쳐 국가의 경쟁력을 비교한다. 한국은 그중 OECD와 G20을 포함한 37개 주요 선진국 군 내에서 낮은 순위(27위)에 머무르며, 아시아 경쟁국들과의 격차를 여실히 드러냈다. 순위 하락 자체만으로 국가경쟁력의 절대적 약화로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구조적 경고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다른 국제지표를 보면 한국의 혁신 역량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임이 확인된다. 지난해 발표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글로벌 혁신지수(GII)에서 한국은 133개국 중 6위를 차지했다. R&D 투자, 특허 출원, 연구 인력 등에서의 성과는 세계적이다. 이처럼 '혁신 역량은 강하지만 경쟁력은 약하다'는 이중 구조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혁신 역량이 실제 산업과 시장에서 경쟁력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연결고리의 약함을 드러낸다. 즉, 시스템 전반의 유기적 작동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다.

IMD 평가에서 한국은 기업 효율성, 기술 인프라, 인재 유치력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순위가 하락했다. 특히 기업의 변화 대응력, 기회 대응력, 디지털 인재 확보, 교육 시스템 등에서 경쟁국과의 격차가 커졌다. 이는 노동시장 경직성, 규제 불확실성, 교육과 산업 간 미스매치 등 구조적 한계가 혁신의 성과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대만이나 중국 등 경쟁국은 최근 몇 년간 디지털 전환, 규제 혁신, 인재 육성, 산학협력 강화 등에서 과감한 정책 변화를 추진해왔다. 반면 한국은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성, 창의적 인재 양성 등에서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가경쟁력 순위 하락을 단순한 위기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숫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시스템의 균열, 연결의 약점을 드러내는 신호다. 혁신 역량이 아무리 높아도, 그것이 산업 현장과 시장에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국가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하여, 실질적 전환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국제지표의 맥락적 해석이 필요하다. 순위 하락의 원인을 단순 내부 문제로만 돌리지 말고,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와 경쟁국의 정책 변화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약점과 기회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

둘째, 세부 지표별 실증적 분석이 강화돼야 한다. 기업 효율성, 기술 인프라, 인재 유치력 등 구체적 약점이 무엇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STEM 인재의 유출입, 디지털 역량, 직업교육의 국제 경쟁력 등 실증적 비교가 필요하다.

셋째, 실행 가능한 정책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사회적 안전망 강화, 규제 혁신(네거티브 규제, 규제 샌드박스 확대), 산학연 협력 강화, 평생교육 체계 혁신 등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혁신 성과가 산업화·사업화로 이어지도록 오픈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대·중소기업 협력 모델 구축 등 실질적 연결고리도 필요하다.

넷째, 사회적 신뢰와 연대, 참여와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중층적 노사정 협의체, 생산적 갈등 조정 메커니즘, 예측 가능한 정책 환경 등 사회적 자본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뢰와 협력이 일상화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만 시스템 전환이 가능하다.

국가경쟁력 27위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체계의 균열, 사회 각 영역 간 연결고리의 취약함이 있다. 이제는 혁신의 성과를 실질적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연결의 힘'을 키워야 할 때다. 시스템의 본질적 전환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쟁력은 경제지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지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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