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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방의 경제주권, 지금이 새로운 기회다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이선희 위원장. 경북도의회 제공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이선희 위원장. 경북도의회 제공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대정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방의 역할 강화'와 '지역 간 불균형 해소'라는 과제는 그 어떤 정부도 피해갈 수 없는 구조적 요구다. 그리고 이 요구는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새 정부가 반드시 응답해야 할 이 시대정신은 단순한 구호로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지역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구조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스템을 바꾸고, 권한을 내리고, 재정의 흐름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지방분권이라는 키워드가 놓여야 한다. 지방이 진짜 주체가 되어 설 수 있어야, 지역 경제도 자립할 수 있다.

지방, 특히 경북의 경제 현장은 지금 말 그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도내 기업 유입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청년 인구는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있다. 경북의 주력 제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농촌은 고령화와 인력 부족으로 생존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농업은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업(業)'이 아니라, 현재 세대도 떠나는 업종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지방의 지속 가능성이 뿌리째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가 이 상황을 능동적으로 타개하기는 어렵다. 산업 구조를 조정하려 해도, 모든 규제 권한은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고, 정책 하나 추진하려 해도 수많은 중앙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 한다. 자체 재정 여력은 부족하고, 투자 유치 인센티브조차 중앙 지침에 맞춰야 한다. 이른바 '지역주도형 정책 실행'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그림에 가깝다.

특히 경북은 행정구역이 넓고, 산업과 지역 특성도 매우 다양하다. 포항의 철강, 구미의 전자, 안동의 바이오, 김천의 교통물류, 영천의 모빌리티 산업까지, 각각 전혀 다른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 또 청도나 영양처럼 농업과 관광, 정주 여건이 복합적으로 얽힌 지역은 인구감소와 지역활성화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중앙정부가 만든 하나의 정책 틀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전국 유통망을 다루겠다는 것만큼 비현실적이다.

진짜 '지방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재정 권한과 규제 권한을 지방으로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지역이 기획하고, 지역이 예산을 편성하며, 지역이 실행하는 구조가 작동해야 한다. 단순히 지방정부에 사업을 떠넘기는 식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고 설계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율성이 주어져야 한다. 특히 지역전략산업을 키우고, 기업을 유치하며,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인센티브 설계와 자금 투입 권한도 지방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야말로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는 산업 구조 변화와 예산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지역 특성에 맞는 입법과 제도 개선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지방이 더 이상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주체'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방이 멈추면, 대한민국 전체가 멈춘다. 수도권 중심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지금, 지방의 활력을 되살리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길이다. 지방의 자립은 곧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다. 지금이 그 시작점이어야 한다. '지방시대'를 외치는 데 그치지 말고, 지방의 경제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북도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이선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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