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추락사 산업재해는, "안전제일주의"를 최우선 원칙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공사현장의 표어가 무색할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건설 포항 현장에서는 외벽 작업을 하던 한 근로자가 추락사했고, 2022년에는 광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신안산선 광명 구간 지하터널 붕괴 사고 역시 안전관리 부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편안한 아파트'는 이제 '불안해질 수 있는 아파트'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수도권 아파트값만큼은 붕괴 될 조짐이 없다. 강남 3구의 'e편한세상'아파트는 '재테크 하기 편안한' 아파트가 되었고, 반포 자이 아파트는'내 집 마련'보다는 '금광'으로 여겨진다.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노래도 있다. 로제의 〈아파트(APT)〉는 한국형 아파트를 알리는 전 세계 유행가가 되었고, 윤수일의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는'영끌'해도 살 수 없는 희망사항이 되었다. 아파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한 편의 연극 때문이다.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아무도,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가수 윤수일의 「아파트」를 주제곡으로 공사 현장 산업재해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연극이 최재성 작·연출,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 모르겠다>(예술공간 혜화)이다. 아파트로 추정되는 공사장 6미터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진 추락사고를 중심으로, 산업재해의 죽음을 두고 공사장 현장에서 벌어지는 극 중 인물들의 부조리한 모순을 웃음으로 증폭하는 블랙코미디다. 산업재해 문제를 웃음의 부조리로 비틀어 다루는 연극은 <에라, 모르겠다>가 유일하다. 작품은 대기업 건설사들이 착공 이전에 반드시 관람해야 하는 캠페인 같은 연극이다. 극 중 인물들의 캐릭터에 웃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관리 출구가 부재한 모순적인 현실을 진단하게 되는 작품이다.

◇블랙코미디로 감각하는 출구 없는 안전 제일주의
무대는'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사 현장이고, 공사 현황판과 추락 위험 안내판들이 붙어 있다. 공사 현장은 군사훈련을 방불케 한다. 근로자들의 안전화는 군화 같고, 작업복은 군복처럼 보인다. 안전모는 야외 사격장 철모처럼 보이고, 안전 루프는 무재해 현장을 알리는 형식적인 훈장처럼 보인다.'안전제일'을 외치며 하나, 둘, 팔, 다리, 올리고 내리고 옆으로 펴고 내리는 것을 반복하며 척척 각을 맞추는 공사장 근로자와 체조를 시키는 김 대리(김지명 분)는 안전을 철통방어하는 교관처럼 보인다. 연극은 국민체조 후 폭격 소리 같은 굉음으로 추락사를 알리는 장면부터 전개되는데, 안전제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재해 현장의 부실함을 드러내고, 상황이 딴판으로 흘러가면서 안전관리는 비현실적인 쇼일 뿐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추락사를 둘러싸고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응급상황을 대처하는 모순을 드러내는 회사 측과 현장관리자, 반장으로 통하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묘한 웃음들이 증폭된다.
안전 제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공사 현장은 초짜 노동자(부현)도 반장으로 통하고, 박 반장(박희문 분), 김 반장(김병건 분)은 권위적 구조와 조직 위계에 눈치 게임으로 생존하는 자들이고, 김 대리는 안전하지 않은 조직에 살아남으려는 현장 책임자다. 현장의 유일한 여성인 민주임(민신혜 분)은 눈치 빠른 실속형이다. <에라, 모르겠다>의 역설적인 웃음은 추락사 후부터 전개된다. 대형 알루미늄 사다리를 놓고, 안전을 위한 2인 1조 작업의 중요성을 현장 반장이 강조하는 장면으로부터 안전관리의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극 중 인물들의 캐릭터들도 구조적인 문제를 펼쳐놓는다.

<에라 모르겠다>의 비극적인 진검승부는 추락사한 사내가 손수레에 실려 공사 현장에서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관객은 유일하게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초짜 노동자, 극 중 인물들과 책임자, 현장 관리자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응시하는 극 중 장면에서 블랙코미디의 진수(眞髓)가 발화된다. 초짜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윗선 지시로 직장 생존을 위해 죽음을 은폐하는 극 중 인물들이다. 구급차도 신속하게 부를 수 없는 결재 시스템, 사고사를 전가하는 현장 감독, 어머니의 잡채가 그립다며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민주임 대사에 무거운 죽음으로 인한 정적은 키득키득 웃음소리로 터지면서도, 초짜 부현이 공사현장 추락사 발생 시 응급 구조 과정을 메타적 극 중 상황으로 인식시키는 대목에서, 사다리와 안전제일의 구조적 모순을 블랙코미디화한다.
추락사를 둘러싸고 김 대리는 결재 시스템과 책임을 전가하는 직급을 핑계로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고, 건설 현장 하청업체 사장은 초짜 인부(부현)의 항의에도 "40년 전통 할머니 장터 국밥집 할머니"는 장인이 아닌 아르바이트라고 비유하며, 죽음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관리 시스템과 안전 출구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로 전진한다. 산업재해가 소환되는 현실 장면은 짠하다. 사장(손홍민 분)은 추락사 보고를 받고도 40년 전통 국밥집 할머니는 뭐다?"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김 대리한테 강조하는 장면은 한국 사회를 향한 메타포가 묻어있다. 40년 국밥집 할머니도 아르바이트로 대체되는 한국 사회 비정규직 현실과, 건설 현장의 죽음이 국밥집 알바처럼 인간을 노동의 도구화로 인식하는 구조를 냉소적인 풍자로 드러내는 장면은 안전 제일주의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날카로움이 묻어있다.

◇비극의 유쾌함. 산업재해의 사회
사장은 노래방에서 「아파트」를 부르며 재난 상황에서 탬버린을 흔들고,'라떼'시절을 소환하기도 하며, BTS 정도는 안다며 브레이크댄스까지 엉거주춤하게 추어대며 공사 현장의 안전제일 국민체조는 아수라장 같은 사장 찬가 안무로 바뀌면서 무대는 일순간 웃음으로 장전된다. 군사훈련을 방불케 할 정도의 초긴장 상태에서, 공구 통 하나도 안전제일을 엄격히 따지는 공사 현장과는 다르게, 추락사를 은폐하거나 외면하는 극 중 인물들의 모순적인 행동에 <에라 모르겠다>의 블랙코미디의 풍자적 웃음은 씁쓸하면서도 90분 동안 극을 몰입시키는 장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가 인물들의 대사나, 안전 출구가 부재한 안전 제일주의 공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웃을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블랙코미디로만 연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 산업재해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현장과 사내의 죽음을 판타지로 맥락화하고 구조적인 현실을 응시하는 것은 초짜 반장 부현(조부현)이다.
추락사 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시간 동안, 극 중 인물들은 재해로 인한 사고사를 회피하고, 부현은 죽은 사내의 혼령과 대화하기도 하며, 사내(류문희 분)는 마치 살아 있는 자처럼 환영으로 나타나 부현 앞에서 노동 현장의 사연을 늘어놓기도 한다. 작품성을 발휘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은, 추락사를 당한 사내의 수레를 끌고 안전불감증 병에 걸려 안전 출구가 없는 한국 사회 시스템의 미로에서 손수레를 끌고 미쳐가는 부현이다. 결국 침묵적으로 은폐되는 진실을 마주하는 부현마저도 비상 출구가 없는 사회에서 "에라, 모르겠다"라며 고장 난 자본주의와 안전 시스템 구조로 편입되어 가는 씁쓸함은 연극 <에라, 모르겠다> 블랙코미디의 진미다.

◇웃기면서 아프다, 배우들의 블랙코미디 본능
마지막 장면에서 '에라 모르겠다'의 의미를 눈치채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사다리를 척척 접고 이동시키는 알바생도 공사 현장에서 반장으로 통하는 무재해 공사 현장에는 사내의 죽음만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는 비극적인 사회다. 연출이 응시하는 것도, 사회 구조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모순이 가득한 세상은 산업재해도 질끈 눈을 감고 타협하는 "에라, 모르겠다"정신 아닐까. 추락사를 사장한테 보고하는 극 중 장면은 개방적인 무대에 비해 특정 장면이 연극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추락사한 사내가 사연을 쏟아내는 첫 독백 장면은 진지하다. 무대가 개방적인 구조이고 캐릭터가 사회적 의미를 부착하고 있는데 불필요해 보인다. 의미를 강조할수록 서사는 모호해질 수 있다. 두 가지만 제외하면, 최재성 연출의 <에라, 모르겠다>는 연출도, 배우도, 작가도 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 모르겠다>는 극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이 공사 현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고, 능청스러우면서도 연기의 날것들로 무장한 배우들의 앙상블과 웃음의 속도감이 현재 산업재해가 오마주 될 정도로 닮았고, 배우들의 캐릭터화도 탄력적이다. <에라, 모르겠다> 초연부터 초짜 인부로 분하고 있는 조부현은 삶이 되었고, 사장 역의 손홍민 연기로 웃음의 속도감이 좋다. 엄마표 잡채를 찾는 민주임(민신혜)의 캐릭터는 배우들 틈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이다. 배우들의 앙상블과 연기 합이 좋은 작품이 <에라, 모르겠다>이다. 6월 22일까지 예술공간 혜화에서 현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한화건설 등 한국 사회 대표적인 아파트 브랜드 건설회사들과 공사 현장 관계자들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자인 최재성의 극단 이야기가는 연극 <개>로 2016년 창단 공연을 한 뒤 <비보호 좌회전>(2018), <마타하리>(2018), <후성이네>(2020), <바쁜데 뭐하러 왔어, 다 똑같지 뭐>(2024)가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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