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1회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 심사평>

신상조 수필가
신상조 수필가

챗봇에게 주문하면 알라딘의 램프를 문지르기라도 한 듯 근사한 수필 한 편을 뚝딱 대령한다. 이제 '내면을 가진 매끈한 문장'이나 '경험에서 우러난 사연의 안정적 구조'라는 기준은 좋은 수필의 조건이 되지 못할 위험에 처했다. 그러나 기계가 가지지 못한 게 인간의 정서적 공감 능력이다. 인간의 문학은 그 정서적 실감(實感)으로 결국 기계적 문학을 뛰어넘는다.

박미자의 '쇠 달구지'는 낡은 고물 트럭을 매개로 부부의 성실한 삶을 긍정적 시선으로 보여준다. 친정아버지의 소달구지에 빗대 '쇠 달구지'라 부르는 트럭이 폐차되기까지의 과정은, 진솔함이 주는 감동이 수필의 미덕임을 느끼게 한다.

박희곤의 'AI가 투병기를 쓸 수 있을까?'는 제목에서 보다시피 AI가 병원 차트에 기록된 정보로 진단서는 발행할 수 있어도 투병기를 쓰기에는 무리임을 밝히고 있다. 노인요양병원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문제나, AI시대의 글쓰기 방식이라는 소재가 시의적절하면서도 흥미롭다.

반충환의 '달밭'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에 더해 노년의 과거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심리가 서정적으로 펼쳐진다. 상실감의 미학적 표현이 '삶의 울림'이라는 아쉬움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박양근 부경대 교수
박양근 부경대 교수

변재영의 '함지박'은 사물인 '함지박'의 특성에 "기구한 생을 치열하게 살다 가신 어머니" 삶의 포용력을 겹쳐놓는다. "생선 반티"가 생계 수단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思母曲)은, 사물과 삶의 일치를 통한 수필 구성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안병숙의 '땡겨 볼까요'는 소위 춤꾼이 상대에게 춤을 신청할 때 하는 세속적 멘트를 제목으로 빌려왔다. 아버지의 농사일이나 목도리를 잃어버려 아버지한테 혼이 난 에피소드를 춤사위로 펼쳐 내는 솜씨가 예사롭잖다. 내용적 감동과 형식적 해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수작이다.

응모자들의 학력이 대체로 높고 글쓰기 교실이 많아진 덕분인지, 문장력이나 구성력이 안정적이고 미학적 성취도가 웬만한 수준을 넘어선 작품들이 많았다. 다만 새로운 진리를 구현할 만한 사회적 발언이라든가,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사유와 인식의 확장이 아쉬웠다. '시니어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연륜', '사물을 매개로 하는 사유와 인식의 확장', '감성과 지성의 적절한 조화', '소재의 다양성과 창의적 표현'이라는 기준에 따라 각자 일곱 편을 선택하고, 합친 열네 편에서 다시 힘겹게 다섯 편을 골랐다. 아쉽게 당선에 들지 못한 분들께 진심을 담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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