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너지 환경이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원자력,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정부는 무탄소전원(CFE·원전+신재생+수소암모니아 연료전지& 석탄가스화 복합발전)으로 전환을 가속화해 2038년쯤 70.2%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요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AI(인공지능)·데이터베이스·전기차 등 미래첨단산업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원전'을 통한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처럼 탈핵의 경험이 있는 미국만 봐도 최근 100GW 규모의 원자력발전용량을 400GW까지 늘리고, 오는 2030년까지 대형원전 10기 착공을 진행할 계획이다. 친환경에너지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유럽에서도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원전을 택하고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을 선언했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폭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로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재생에너지의 비율 문제를 넘어 재생에너지와 원전에너지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의 새로운 원전 정책, 영덕이 구심점 될까 '우려반, 기대반'
경북은 국내 26기(발전설비 용량 24.65GW) 원전 가운데 절반인 13(11.4GW)기가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산업지'다.
문제는 원자력산업의 구심점인 경북 동해안 지역이 정권교체 때마다 변화되는 에너지 정책으로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특히 영덕군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천지원전'이라는 이름으로 원전 건설부지(전원개발사업예정구역)로 지정됐다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백지화됐다.
이 과정에 영덕군은 원전 유치 보상금으로 지급된 가산금 409억원을 반납하게 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고, 현재까지 신뢰를 저버린 정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울진 신한울1·2호기가 준공돼 가동되고 3·4호기는 지난해 10월 착공식을 가지면서 원전 생태계 회복의 신호탄이 됐지만 탄핵에 따른 정권 교체로 원전은 또다시 기로에 놓였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기조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자력을 기저전력으로 하겠다는 에너지믹스에 방점을 두면서 원전 가동과 건설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제11차 에너지기본계획에는 2038년까지 국내 전기 수요가 현재 수준보다 약 30%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며 총 2.8GW(기가와트) 설비용량 원전 2기를 2037∼2038년 도입하기로 했다. 또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SMR(소형모듈원자로) 상용화 실증 1기( 0.7GW)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당초 오는 8월쯤 신규 대형원전 2기와 SMR 1기 건설 부지 선정 공모를 할 예정이지만, 경북 동해안 지역 지자체에서는 현재 원전유치에 대한 분위기가 전혀 없다.
원전부지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영덕군의 경우 정부의 말 바꾸기로 원전유치 설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국가의 원자력 정책을 믿고 지지하며 지역의 소중한 자산을 내어줬는데, 결국은 갈등만 조장하고 끝난 꼴이 됐다"며 "영덕군이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지정한 만큼 앞으로 신규원전 부지와 관련된 협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주 SMR·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조성에 집중
경북도는 국내 최대 원전 집적지로써 원자력생태계를 복원하고 원전인프라 확대와 원전산업 강화에 힘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선 원자력 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중요한 데, 경주와 울진이 지난 2023년 3월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되며 좋은 출발을 알렸다.
예타 면제가 확정된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은 죽변면 일원 158만㎥ 부지에 4천여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원전 10기에서 생산되는 전기(2GW)와 원자력의 고온 열을 활용해 연간 30만톤(t)의 청정수소를 생산, 저장, 운송, 활용 등 전 주기를 포괄하는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사업의 골자다. 단지가 완성되면 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 전기를 활용한 대한민국 최초의 모델이 탄생하는 셈이다.

경주 SMR 국가산단은 약 4천억원을 투입해 문무대왕면 일원에 113만㎡ 규모로 조성하려고 한다. 올해 예타 조사를 신청해 통과하면 2028년 착공해 2032년 준공 예정이다.
경주시는 SMR 국가산단이 조성되면 관련 기업 유치와 원자력연구원 산하의 SMR 연구개발 전담 기관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와 연계한 SMR 공급망을 구축하고 SMR 혁신원자로 제조, 소재·부품 장비 산업 육성 및 집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경주를 차세대 원자력 국가산업 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경북도 한 관계자는 "전세계가 급증하는 전력수요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상황에서 경북도 역시 지역에 자리한 원전을 활용한 기업유치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AI 등 첨단산업 육성 관건은 에너지
포스코 등 경북 동해안 지역 기업들은 신산업 성장세에 따라 산업용 전력이 현재보다 수십 배에 이상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산업 전력 통계 등에 따르면 일반 제조업의 경우 연간 평균 150~300kWh(킬로와트시)가 소비된다. 반면 2차전지는 제조 공정별 차이는 있으나 연간 평균 약 700~1천kWh가 필요하다. 제조업에 비해 최대 5배에 달하는 전력이 필요한 셈이다.
고온 열처리와 수분 0%에 가까운 극저습·극청정 환경 유지, 자동화 라인 및 설비 밀도, 제품 완성 후 충·방전을 반복한 전지 활성화 작업 등 2차전지와 관련된 공정의 모든 부분에서 막대한 전력이 소모된다.
이러한 특성 탓에 2차전지 특화단지가 있는 경북 포항시는 사업 초기부터 한 차례 홍역을 겪기도 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2차전지 특화단지 중 영일만일반산단은 올해 496mWh(메가와트시)의 수요전력이 2030년에는 857mWh로 늘어날 전망이다.
블루밸리국가산단은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내년 111mWh가 필요하며, 2030년이면 787mWh로 증가하게 된다.
현재 전력 공급량은 영일만일반산단 468mWh, 블루밸리국가산단 200mWh가 고작이다.
아울러 AI산업 개발이 진행 중인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가 활성화되면 2036년까지 1.3GWh(기가와트)가 필요할 것이란 전망치도 나왔다.
AI 모델 학습, 클라우드 서비스, 검색 엔진, 스트리밍, 블록체인, 대규모 저장·연산을 위한 데이터센터 등 AI산업 역시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이에 산업부는 2028년까지 추가 변전소 건립, 전용 선로 설치, 여유 전력분 집중 투입 등으로 총 630mWh를 확보하며 당장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이후 수소 특화단지 선정 및 AI컴퓨징센터 도전 등 포항을 중심으로 에너지 집약형 산업의 성장세가 더욱 뚜렷해짐에 따라 현재의 전력난은 더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경북도와 포항시는 원전 활용이 어려운 포항지역 사정상 공공주도 해상풍력·암모니아 발전(분산에너지특화지역)·공장 지붕 태양광 설치 등 신재생 에너지 지원에 주력하며 에너지 확보에 힘쓰고 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RE100처럼 글로벌 탄소제로 정책에 필수적이긴 해도 아직은 기존 발전방식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으며, 안정성 및 생산효율 등을 감안했을 때 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24시간·365일 균일한 전기공급이 필수적인 AI 및 데이터산업에서는 태양과 바람 등 자연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 신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포항 등 산업밀집지역에 대한 SMR 건립 필요성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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