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규칙을 개정해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최소 20분 이상 휴식을 의무화했다. 당초 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이유로 규제개혁위원회가 삭제를 권고했던 이 조치는 연이은 온열질환 사망 사고와 여론의 압력으로 극적 전환을 이룬 것이다. 이는 극단적 폭염이 일시적 기상이변이 아닌 '뉴노멀'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치로 읽힌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 만으로 폭염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최근 5년간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100명을 넘어섰지만 이 숫자조차 실제 피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정부 통계는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기준으로 집계되기에 논밭에서 쓰러진 고령 농민, 공사장에서 탈진해 숨진 일용직, 배달 중 실신한 청년 기사 등 '보이지 않는 희생자'는 통계 밖,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통계의 공백은 곧 사람의 생명으로 메워지고 있다. 폭염은 단순히 '무더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열악한 노동조건, 불균형한 복지 시스템이 겹쳐 만든 복합적 사회 재난이다.
무더위는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피해는 실내 냉방조차 버거운 독거노인, 그늘 없는 도로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 이륜차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 노동자 등 특정한 계층에 집중된다. 이들에게 폭염은 생존의 위협이며, 매일 반복되는 생사의 경계다. 문제는 폭염이 구조적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여전히 단편적이라는 점이다. 무더위 쉼터나 냉방비 지원 같은 단기적 대책은 존재하지만 보호 체계가 촘촘하지 않고 현장 이행력도 부족하다.
이에 비해 해외 주요국들은 폭염을 명확히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구조화된 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최근 더 적극적인 대책을 깅구하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는 2003년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약 1만5천명이 사망한 비극 이후 고위험군 사전등록제를 도입했다. 폭염 경보 발령 시, 지자체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등록된 독거노인과 만성질환자의 안부를 확인하고, 응답이 없을 경우 직접 가정방문까지 이뤄진다. 이는 단순한 '경보 시스템'을 넘어선 살아 있는 복지체계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은 폭염 경보 단계가 격상되면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모든 실외작업을 법으로 금지한다. 건설 현장 등에서 노동자 사망률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하며, 강제력이 있는 규정이 실질적인 생명권 보장의 핵심임을 입증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고온경보(33도 이상) 시 '그늘·물·휴식' 원칙을 법제화했고, 위반 시 고용주에게 벌금이 부과된다. 이는 더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권리를 단순한 가이드라인이 아닌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재정의한 조치다.
일본은 민간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는 방식으로 폭염 대응을 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 편의점, 택시회사, 약국 등이 무더위 쉼터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거리에서 쓰러진 시민을 발견한 택시기사의 신고는 의무 교육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조적 정책 변화와 체계적 대응이다. 규제 개혁과 관련하여 생명·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변화된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이번처럼 보다 전향적·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대응도 일상적 보호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먼저, 이번에 법적으로 강제력을 갖게 된 폭염안전 5대 수칙인 시원한 물, 냉방장치, 2시간마다 20분 휴식, 보냉장구 지급, 119신고가 모든 노동현장에 조속히 안착되도록 해야 한다. 현장에서 실천되어야 안전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
둘째,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사망은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면 보호받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희생자를 기록하고 보호하기 위한 전수조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저소득층과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냉방비 바우처, 폭염 기본소득 등 직접 지원 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 넷째, 무더위 쉼터가 이름뿐인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운영시간을 연장하고, 냉방시설을 강화하며, 이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안심 공간 확보가 병행되어야 한다.
끝으로, 응급 대응 매뉴얼 보급 및 실전 훈련이다. 열사병은 단 몇 분의 대응 지체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만큼 이런 조치가 몸에 배도록 하는 교육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오늘날, 폭염은 더 이상 예외적 기상이변이 아니다. '뉴노멀'에 새로운 접근과 새 기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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