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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지속 가능한 관계 구축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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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일본연구센터장)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위한 시스템 구축해야"
'구조적 갈등요인의 관리', '소통과 실질 협력의 확대',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협력' 필요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일본연구센터장). 이현주 기자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일본연구센터장). 이현주 기자

지난달 23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지금까지 축적돼온 한일관계의 기반에 입각해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갖고 협력관계로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다. 한일관계는 양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적지 않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본 전문가인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일본연구센터장)를 만나 한일관계 현주소와 상호 윈윈의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대일외교 추진 전략 등을 들어봤다.

-한일관계 현주소를 짚어 달라.

▶한일관계는 지배-피지배, 선진국-개도국의 관계를 거쳐 양국이 미국 등 주요 선진국과 함께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로 동아시아지역과 세계의 안정 및 번영을 논의하는 파트너 관계로 진입했다. 20세기 전반에 일제의 식민지배로 양국의 운명은 제국주의 국제질서의 주체와 객체로 갈렸다. 20세기 후반에는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정상화됐다. 한일회담 당시 일본의 10분의 1이던 한국의 1인당 GDP는 이제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지난 120년 동안 한일관계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역사 및 지리적 인접성 특히 일제에 의한 한반도 식민지배의 기억은 한일관계를 '가깝고도 먼 관계'로 만들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청산'의 대상인 동시에 생존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할 '협력'의 상대였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이후 국력과 체제 가치관의 접근, 교류 기회의 증대에 따라 한일관계는 대칭화·수평화됐다. 역설적이게도 한일의 체제 동질성의 증가에 역비례해 한일관계에서 협력보다 갈등의 요소가 증가했다.

그 배경에는 과거사와 국가전략을 둘러싼 '이중의 갈등구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대의 한일관계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는 여러 차례의 부침을 겪었지만, 이 시기에는 '최악의 한일관계'로 불릴 만큼 깊고 긴 대결 국면이 이어졌다.

2012년부터 10년간 양국 정상에 의한 상대국 단독 방문이 없었다. 한일 간에 과거사 갈등이 상시화하고, 이 갈등이 경제 및 안보 등 제반 분야로 확대됐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한일관계가 개선됐지만, 과거사 화해가 국민의 눈높이만큼 진전되지는 못했다.

이재명(오른쪽)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회담하는 모습.연합뉴스
이재명(오른쪽)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6월 캐나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회담하는 모습.연합뉴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인 2025년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기조 위에 대일외교의 목표를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도모'로 설정했다. 지난 8월 이 대통령은 한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셔틀 외교'를 복원했다. 두 정상은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흔들림 없는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한국의 정부 교체에 따른 한일관계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고, 이재명 정부의 대일외교가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양국 관계에 영향을 끼칠 가장 큰 변수는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 내 정치 상황의 변화다. 일본의 경우 최근 이시바 총리가 사임 의사를 공식 표명하면서 한일관계에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고, 우리도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현재의 정책 기조가 변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주의 대일외교' 정책 기조 배경은.

▶이재명 정부가 대일외교에서 과거사 문제보다 실질 협력을 우선한 것은 국제질서의 불확실성 대응 차원에서 한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반세기 이상 유지됐던 미국의 대중국 관여 정책은 2010년대 후반부터 견제적 요소가 강화되면서 향후 상당한 기간에 걸쳐 미중 간 대결 구도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2기 정부는 현재 세계 주요국과 관세와 방위비 관련 협상을 벌이고 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미중 전략경쟁과 강대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그 부당함을 주장하는 당위론적 접근이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균형외교로는 국익 확보가 어려워진 것이다.

현 정부의 대일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 안정화에 대한 일본 측의 적극적인 호응을 유도해 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한일관계에서 과거사 비중의 완화, 한미일 협력의 강화, 지역 및 다자 차원의 협력 확대, 경제 통상, 비전통 협력 및 인적 교류 등 실질 협력의 확대를 기조로 하는 투-트랙 접근법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나가야 한다. 양국의 중장기 국가전략에서 공통분모를 확대해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동의 '미래 비전' 채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건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6월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건배하고 있다.연합뉴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정착을 위한 과제는.

▶첫째는 '구조적 갈등요인의 관리'다. 한일관계의 구조적 갈등요인을 사전에 대비하고 상황 발생 시 축소 지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강제동원(징용), 구 일본군 위안부,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한일대륙붕협정 등과 같은 돌발 변수를 철저히 관리해 협력의 틀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역대 한국 정부가 출범 당시에는 한일 협력을 내걸었지만 결국은 대립과 갈등으로 막을 내렸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과거사 문제의 경우 한일 간의 인식 차이를 인정하고 이것이 한일 협력을 제약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정치지도자의 의지와 성숙한 국민 의식도 중요하다. 아울러 기존 과거사 합의와 해법은 유지하되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가로서 약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강제징용 문제의 '제3자 변제안'과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국회에서 초당적인 특별법을 제정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포괄적으로 구제하고 추도위령사업, 조사 및 연구 등을 수행할 재단의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는 '소통과 실질 협력의 확대'다. 한일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정상회담 및 셔틀 외교를 활성화하고, 외교·재무·경제·국방 등 각료 회담과 실무 협의를 정례화해야 한다. 외교·국방(2+2) 각료급 협의체의 신설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당의 의석 변화와 의원의 세대교체 및 국제정세 변화를 반영한 초당파적인 의원 교류도 활성화해야 한다.

의원연맹 등을 활용해 신흥 정당, 야당 인사와의 정기적 교류를 확대하고, 방한 초청을 통해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 정상이 합의해 '제3기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를 출범시켜 지속 가능한 한일관계의 토대 구축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는 것도 건설적인 방안이다.

경제적 상호 의존 확대를 위해서는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CPTPP) 가입 외에 한일 통화 스왑 확대, 제3국 시장 공동 진출, 민간 주도의 한일경제공동체 논의, 공동의 산학 연구, 경제 안보, 주요 광물 공급망 및 공동 조달, 첨단기술 표준, 사이버 안보, 에너지 협력, 재생 및 수소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회 및 문화 교류 분야에선 상호 문화 개방의 확대, 스포츠 공동 리그 도입, 국제행사의 공동 개최, 관광 산업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지방 소멸, 인프라 노후화, 연금 및 복지 재원 문제 등 양국의 공통 과제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일본인의 한국 방문 증진 방안을 마련해 풀뿌리 차원의 상호 이해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는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협력'이다.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에 비례해 한일 협력과 한미일 공조의 필요성이 커졌다. 우리에게 한일 협력은 원활한 한미관계는 물론 대북한 공조, 중국 및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안정화,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 등 소다자 협력과 동아시아지역 및 글로벌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다자외교에선 한미일 협력과 한중일 협력을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하고 국제연합, APEC 정상회의, G-20, ASEAN 회의 등 다자회의에서도 상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G7 확대 및 한국의 참여에 대한 일본의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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