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김진만] '왼발박사' 이범식과 경주 APEC 정상회의

광주~경주까지 약 400km 국토 도보 종단,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 디딤돌이 되길

김진만 동부지역취재본부장
김진만 동부지역취재본부장

대한민국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 정국에서 APEC 정상회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관련 기반 시설 조성이 늦어지면서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APEC 정상회의를 목전에 두고 성공 개최를 위해 중앙·지방정부는 물론 정제계가 모두 협력하며 행사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PEC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이재명 대통령 명의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20개 회원국 정상들에게 초청 서한을 발송했다. 또 행사준비위원장인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근 두 차례 경주를 찾아 행사 준비 상황을 직접 챙겼다. APEC 경제인 행사 추진위원회도 최근 경주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민관정 협력을 다짐했다.

2025 APEC 정상회의는 21개 회원국 정상과 글로벌 CEO들이 모여 아시아태평양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이 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인 경주는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의 품격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이 때문에 정부는 많은 예산을 투입해 행사장을 꾸미고 기반 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또 문화, 수송, 경호, 안전,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빈틈없는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APEC 정상회의의 성공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들, 특히 경주 시민들은 민간 외교사절이라는 생각으로 APEC에 대한 자발적 동참과 실천이 필요하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글로벌 에티켓 교육, 자원봉사자 활용, 시민문화운동인 'K-MISO CITY'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시민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주목할 만한 이색 행보가 하나 있다. 양팔과 오른 다리가 없는 '왼발박사'로 알려진 이범식 영남이공대 교수가 2025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광주에서 경주까지 약 400㎞에 이르는 구간을 도보로 국토 횡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박사는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전기공으로 일하던 22세 때 고압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그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그나마 성한 왼발 발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글씨를 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다. 47세에 만학도로 대학에 입학해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몇 년 전부터 대학 강단에 선 '인간 승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광주 무등산에서 출발해 하루 20~30㎞씩 걷는 강행군으로 14일째인 20일 대구를 거쳐 경산시 경계까지 도착했다. 오는 28일쯤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 도착해 도보 횡단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폭염과 장맛비 속에서 몸이 성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광주~경주 국토 도보 횡단은 '왼발' 하나만으로 장애를 극복한 개인의 도전 이상의 깊은 사회적 '울림'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APEC을 통해 세계에 전하고자 하는 '포용, 지속가능성, 연대'의 가치를 내걸고 걷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바람처럼 국토 도보 횡단이 국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이끌어 내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에 '디딤돌'이 되길 기원하며, 남은 구간도 건강한 완주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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