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화살 같다. 그만큼 빠르게 흘러간다는 뜻.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시간을 화살에 비유한 걸 두고 시간의 방향성을 얘기하는 거란 말도 나온다.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뜻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가 있다. 2009년 작품이다. 다들 알 만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이다. 노인 외모로 태어난 아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젊어지다 '진짜' 아기의 모습으로 눈을 감는다는 게 이야기의 큰 줄기다. 매혹적인 얘기다. 하지만 이건 영화다.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시간은 화살 같아서 거스를 수 없다. 한데 드물지만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믿기지 않는 일, 놀라운 일을 두고 '영화 같다'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스포츠 무대에선 노장들이 가끔 그런 활약을 펼쳐 눈길을 끈다.
'영화 같은' 복싱 전설의 귀환이다. 4년 공백을 깨고 46세에 링으로 돌아온 매니 파퀴아오 얘기다. 지난달 20일 WBC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16세나 어린 챔피언 마리오 바리오스와 대결해 무승부를 일궈 냈다. 통산 8체급을 석권한 저력이 나왔다. 12라운드 내내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시간을 거스른 듯했다.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빠른 발놀림과 왼손 스트레이트가 빛을 발했다. 체력에선 밀렸으나 노련미로 만회했다. 투지는 오히려 까마득한 후배에 앞설 정도. 경기 후 파퀴아오는 "원칙을 지키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 나이에도 계속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테니스 여제'로 불렸던 비너스 윌리엄스도 45세에 코트로 돌아왔다. 지난달 23일 무바달라 시티DC오픈 여자 단식에 출전해 21세 어린 페이턴 스턴스를 상대로 2대 0(6-3 6-4) 완승을 거뒀다.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단식에서 역대 두 번째 최고령 승리 기록이었다.
윌리엄스는 1994년 데뷔한 여자 테니스의 전설. 한 살 아래 동생 세리나와 함께 2000년대 여자 테니스계를 평정했다. 병마를 딛고 건재를 과시해 더 눈길을 끈다. 2011년 만성 자가면역질환, 지난해 자궁근종 제거 수술을 받아 은퇴 위기를 겪었으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다만 현실에서 '해피 엔딩'은 힘들다. 45세 투수 리치 힐이 그런 경우. 23일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최고령 선발 등판 2위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이날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5이닝 3실점(1자책점)으로 '깜짝' 호투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소속 구단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그를 방출 대기 조치했다. 시간과 다시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국내에도 시간과 사투 중인 베테랑이 있다. 오승환은 43세로 한국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그는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이래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 시간을 거스르지 못했다. 구위가 떨어졌다. 타자를 압도하지 못한다.
입지도 달라졌다. 지난 시즌 도중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고, 올 시즌도 부진하다. 지금은 부상과도 싸우는 중이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긴 너무 아쉽다.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길 바란다. MLB의 전설 요기 베라도 그랬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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