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93년 고려의 서희가 거란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흥화진, 통주, 용주, 귀주, 곽주, 철주)를 확보한 것은 한국 외교사의 최대 업적(業績)으로 꼽힌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거란의 공격에 압도된 고려 조정은 나라를 반으로 잘라 내주면서까지 화친을 맺으려 했다. 그런데 되레 영토를 더 넓히는 협상을 벌였으니, 서희가 뛰어난 것인지 소손녕이 바보였던 것인지 알쏭달쏭할 만하다.
사실 서희는 뛰어났고 소손녕도 바보가 아니었다. 서희는 '정확히' 거란이 원하는 것을 주면서 고려의 실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거란이 가장 바랐던 것은 주적(主敵)인 송나라와 고려가 단절(斷絕)하는 것이었고, 서희는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라를 지켰다. 이는 고려-거란 전쟁 이후 고려가 황제국으로서 200년간 동북아 평화의 주축 세력이 되는 발판이 됐다. 거란-송 모두 고려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후손들은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엉뚱한 짓'을 벌이곤 한다. '한미 관세 협상'은 무역·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대중국 견제를 위한 글로벌 군사·안보 지정학의 변화이고 관세(關稅)는 새 시대의 무기가 되었다. 친중·종북, 광우병 괴담의 거짓 선동만 극복한다면 위기는 곧바로 기회로 변할 수 있었지만 이재명 정부는 정확히 서희의 담판과 정반대로 협상했다. 부담은 오로지 한국민과 기업들이 진다. 나라를 반으로 잘라 내주고 호의호식(好衣好食)하려 했던 고려 권문세족의 행태 그대로다.
그렇다고 중국·북한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대북 전단 살포 통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대북 라디오·TV 방송 중단, 북한 만화·영화 등 콘텐츠 국내 유통 검토 등 이재명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온갖 유화책(宥和策)을 쏟아 냈지만, 북한 김여정으로부터 "한국과 마주 앉을 일 없다"는 핀잔이나 들었다. 북한은 오히려 "북미 정상 간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면서 미국에 추파를 보낸다.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 대사는 한·중 고위 포럼에서 "반중 극우 세력을 단속하라"며 한국 정부를 향해 경고하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 왕따 외교의 부끄러움과 피해는 오로지 국민 몫이다.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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