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우크라이나가 NATO(북대서양 방위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되 EU 회원국으로 가입이 용인되는 선에서 미국이 중재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은 여전히 대만을 자국 영토라 주장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대중국 발언에도 불구하고 철회나 사과의 생각은 전혀 없다. 어쩌면 냉전은 끝난 적이 없다.
21세기 들어 국제질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와 뚜렷하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중국과 대만이라는 도전,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의 권위주의 부활 등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면서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은 자신의 안보가 자신보다 훨씬 작은 이웃 국가, 우크라이나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선언하고 지난 2022년 2월 24일 침공했다. 러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그 이웃 국가는 진정한 주권국가가 아니며, 더 강력한 서방 국가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우크라이나를 통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이웃의 영토 일부를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협상의 핵심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돈바스코 지역의 포기다.
1939년에도 이와 비슷한 전쟁이 있었다. (구) 소련의 스탈린(Joseph Stalin)이 핀란드를 침공한 사례다. 당시에도 스탈린은 핀란드와 영토 교환을 제안했다. 그는 발트해에서 전진 군사기지로 사용할 핀란드의 도서들과, 남단에 레닌그라드가 위치한 카렐리야 지협의 대부분에 대한 통제를 원했다. 그 대가로 그는 지협에서 훨씬 북쪽, 핀란드와 접한 소련령 카렐리야의 광활한 쓸모없는 습지를 교환할 것을 제시했다. 핀란드는 스탈린이 요구 조건을 여러 차례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했다. 인구 약 400만 명에 소규모 군대를 가진 핀란드는, 인구 1억7000만 명에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한 제국 소련을 거부한 것이다. 준비와 실행이 부실했던 스탈린의 침공은 핀란드에 의해 수개월간 저지되었고, 붉은 군대에 큰 치욕을 안겼다.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다른 유럽 지도자들은 핀란드를 극찬했었다. 물론 말에 그쳤다. 서방 국가들은 무기를 보내지도, 군사 개입을 하지도 않았다. 결국 핀란드는 명예를 지켰지만 소모전에서 패배했고, 스탈린이 처음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토를 내주었다. 소련의 사상자는 핀란드보다 많았고, 스탈린은 뒤늦게 붉은 군대의 전면적인 재편에 착수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와 독일군 수뇌부는 소련 군대가 결코 무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던 배경이 아니었을까?
이제 시간과 공간을 바꿔보자. 크렘린은 약 10년 후 또 다른 작은 나라에 대한 침공을 승인한다. 쇠락하고 타락한 미국과 그 하수인들은 결코 약소국을 돕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전쟁은 신속하게 일주일 만에 끝날 수 있을것이란 가정이 설득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는 물러서기는커녕 결집했고, 미국이 결정적인 주도권을 쥐었다. 1950년이었다. 스탈린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었고, 그는 평양의 김일성 아첨과 중공이라는 비빌 언덕을 통해 남침을 허락했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규모로 개입해 미군 지휘관을 놀라게 했고, 미군 주도의 연합군을 전쟁 전 분단선까지 밀어내며 교착 상태를 초래했다. 스탈린은 중국의 모택동에게 모든 남침의 작전 실패 책임을 떠넘겼다.
그리고 현재다. 스탈린과 소련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하지만 2류 강대국인 러시아와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 있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의 붕괴 시점의 무기와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물려받았다. 약 4년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그는 1939뇬 스탈린이 마주했던 것과 같은 국제적 반응, 즉 소음은 있으나 분열되고 무기력한 서방 세계의 대응을 기대했을 법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1950년 한국전쟁에 훨씬 가까운 결과를 낳았다.
이번에는 유럽이 미국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어쩌면 우크라이나는 핀란드처럼 명예를 지켰고, 유럽 서방은 명예를 지켰다. 첫번째 결론이다. 역사가 반복되거나 되풀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과거에 만들어진 역사가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의 사건들은 중요했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독일은 대서양 동맹 안에서 재통일되었고, 러시아의 국력은 일시적으로 급감했다. 이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은 민주적 헌정 질서와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EU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20세기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변화가 독일과 러시아 사이 국가들의 삶을 바꾸었지만, 세계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두번째 얘기를 시작해보자. 1991년 이후 구조적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이제 반서방 질서에서 러시아보다 상위에 있다. 강대국 경쟁의 중심은 인도·태평양으로 이동 중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이같은 흐름의 시작은 1970년대부터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20세기 후반의 진정한 분기점은 1989~91년이 아니라 1979년에 있다. 바로 이 해에 닉슨(Richard Milhous Nixon)과 등소평(Deng Xiaoping)은 미중 관계를 정상화하고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통한 거래를 시작했다. 같은 해 이란에서는 팔레비 와정이 무너지고 정통 이슬람이 집권했고, 레이건-대처 혁명은 서방을 재활성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변혁 이후 가장 강력한 세계 재편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시기다. 경제적으로는 브레튼우즈체제가 무너지며, 미국 달러화가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 회원국들의 지지를 받아 자유변동환율체제 하에서 본걱적인 기축통화 지위를 얻게 되었고, 신금융자본주의가 미국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냉전 종식이라는 오해는 미국의 치명적 정치, 외교 및 경제정책들을 낳았다. 미국은 스스로를 서방의 기반으로 보기보다, 전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수호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이란, 러시아라 등은 여전히 유라시아의 고대 문명 국가들로써, 서방의 조건에 따른 단일 세계 질서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편승하면서도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이란은 중동 지역을 불안정화했으며, 러시아는 (구) 동구 유럽 위성국들의 서방 편입에 분노했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는 암묵적 혹은 명시적인 반서방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동병상련의 정서를 갖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음 단계의 세계적 경쟁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감춰진 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 요인들은 지난 1·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지정학적 불안정성 못지않게,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중국의 팽창 전략은 티베트, 신장 위구르, 그리고 인도와 대만 등과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다. 시진핑(Xi Jinping)은 일국양제 약속을 사실상 파기하며 홍콩의 자유와 번영을 훼손한다. 티베트와 신장을 점령하며 제국적 통치를 계승하고, 자신의 캘리포니아를 만들기 위해 인도양으로의 대체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더구나 뛰어난 외교가도 없다. 이웃국가들과의 크고 작은 문제에대한 이해와 설득을 호소할 수 있는, 주변국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인물이 없다. 더구나 오늘날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중국이 국제질서에서 G2로서 존재하는 강대국이 되었지만, 실제로 세계를 하나로 모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무역, 에너지, 기술, 정보 등의 힘은 오히려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다.
1950년대 구 소련의 공산당 총서기 흐루시쵸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는 21세기는 '황인종과 백인종'간의 경쟁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탈냉전 시대는 끝났지만, 베를린 장벽(Berlin Wall) 붕괴 이후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를 포용하지 못한채 무질서의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20세기 이후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가 이제 소멸되고, 다자간 협력은 다극 경쟁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국제 규칙을 수호하는 것보다 기회주의적인 거래가 더 중요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이러한 21세기 지정학의 틀을 새롭게 설정하면서 강대국 경쟁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다음 5년에서 10년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의 세계 질서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4만년 전 이후 인류 역사는 일단 질서가 자리 잡으면 한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는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다음 질서는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냉전 종식 30년 후,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만약 국가들이 경쟁을 위해 협력을 회피한다면, 훨씬 더 큰 갈등의 세계가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 '터미네이터'도 무시못할 변수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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