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민생회복지원금으로 집행된 예산은 13.5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렇게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자명하다. 물가 상승은 돈 가치의 하락을 이끌게 되어 그 피해는 대부분 자산이 없는 서민층에게 가장 혹독하게 돌아간다. '민생회복'이라는 명분으로 뿌린 돈이 오히려 서민의 실질 소득을 갉아먹는 '민생 파괴'의 결과를 만드는 셈이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유사한 성격의 정책이 중앙정부를 넘어 지방자치단체로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괴산·보은·영동군 등 충청권과 보성·순천시 등 호남권을 가리지 않고 지자체는 저마다 앞다퉈 자체 예산을 헐어 현금 지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바닥 수준인 지자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역경제의 기반을 닦는 대신 당장의 환심을 사기 위한 현금 살포를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에서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논의는 부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증원 논의 과정에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의료 수요 예측과 필수의료 수가 체계 개편이라는 본질적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고집하며 증원을 강행하는 동안 의료계는 진료 거부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맞섰다. 결국 정책 타당성 검증 기회 없이 장기적 의료 공백과 정책 백지화라는 실패의 전형을 남겼다.
이처럼 여러 정책이 과학적 근거 없이 감성과 여론에 의해 도입되어 왔다. 처벌의 균형성을 잃었다고 지적받는 민식이법, 실효성 부족으로 폐지된 강제적 셧다운제, 현실을 무시한 도덕적 잣대로 사실상 무력화된 청탁금지법 등이 그 예다. 도덕적인 명분을 등에 업고 빠르게 도입된 이러한 '따뜻한' 법안들은 과학적 근거에 따른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탓에 제도의 효과성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냉철한 분석 없이 오직 선의의 감정에 이끌리면 정책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도치 않은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논리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지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론과 논리가 결여된 채 감성에만 호소하는 이들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론을 대중에게 감추려 애쓴다. 정당한 이치로 대응할 역량이 없기에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심지어 익명 뒤에 숨어 흉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이거나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진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cool head, but warm heart)" 대학에서 처음 경제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교수님이 칠판에 써 주셨던 말이다. 차가운 머리란 냉철한 이성의 활용을, 따뜻한 가슴은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은유한 것이다.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의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정부정책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원칙과 지침으로써 유효하다. 정책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 모두 필요하다.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는 이성과 사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엄밀한 접근을 통해 얻어진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의 해소책을 강구할 때에는 소외되고 어려운 계층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뜻한 가슴은 결국 아담 스미스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았던 공감(sympathy)과 같은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와 반대로 논리나 이성 없이 오직 뜨거운 머리로 정책을 만들고 차가운 가슴으로 사회문제를 마주하는 것이다. 철저한 이성적 사고 없이 오직 선의의 감정에 이끌리게 되면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때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라고 했다. 무논리가 판치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비꼰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마땅히 이치에 합당한 이론과 논리를 가진 자가 이기는 정상적인 사회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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