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미 관세 타결 이후…비관세 전쟁 시작됐다

3500억달러 투자 속에 숨은 비관세 지뢰들

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 협상이 전격 타결됐지만 향후 비관세 장벽을 둘러싼 협상이 더 큰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규제, 농축산물 검역, 투자 펀드의 운영 방식, 데이터 반출 등 다양한 비관세 영역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에 대응할 전략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정부는 8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까지 해당 쟁점들을 놓고 협상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3일 "이번 관세 협상은 서면 문건 없이 구두로 이뤄졌으며, 향후 구체적 세부 내용은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논의 테이블에 오른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이 요구하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다. 구글은 1:5000 축척의 국내 지도 데이터를 국외 서버로 이전해 서비스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며, 한국은 안보 우려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초 이달 11일로 예정됐던 정부 부처 협의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연기됐다.

디지털 통상 이슈도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이 자국 IT 기업에 불리한 '비관세 장벽'이라고 지적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해왔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싼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추가 개방은 없다"고 밝혔지만, 검역 절차 간소화 등 비관세 조치는 계속 논의될 전망이다. 미국은 사과, 복숭아, 감자 등 10개 품목의 수입 검역 절차에 대해 한국 정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 품목은 현재 국제식물보호협약(IPPC) 기준에 따라 단계별 검역을 진행 중이다. 감자는 6단계, 사과는 2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 측은 유전자변형작물(LMO) 감자와 같은 LMO의 신속한 수입 절차를 요구하고 있으며, 바이오에탄올 사용 의무화와 같은 에너지 부문 압박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세계 최대 바이오에탄올 생산국이라는 점에서 자국산 옥수수 소비 확대를 위한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3천500억달러 규모로 발표된 대미 투자 펀드의 운영 구조도 모호한 상태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의 투자 수익 90%가 미국에 귀속된다"고 발언했으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그런 합의는 없었다"며 정면 반박했다. 이 같은 발언 차이는 펀드 구조와 수익 배분 문제도 향후 협상 대상임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후속 협상에서 세부적 쟁점을 둘러싼 교묘한 수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합의를 도출한 앞선 협상이 사실상 '비관세 장벽 완화'를 압박하는 전주곡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세부적인 사항에서 자율성과 국익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합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은 것이지, 협상이 끝난 것이 아니다"며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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