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슨가젤은 빠르다. 가늘고 기다란 두 개의 뿔은 그 끝이 전방을 향해 약간 구부러져 있고 날카롭다. 궁지에 몰리면 이 뿔로 포식자를 위협해 탈출에 성공하기도 한다. 초식동물이 대개는 그렇듯 이 동물 또한 예민한 감각으로 주위를 경계하고 위험에 봉착할 경우 빠른 발을 이용해 달아난다.
지그재그로 동작을 바꾸며 질주하는 이 동물이 사냥 당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날랜 동작 또한 미봉책이고 게다가 새끼일 경우 더 취약할 건 불문가지다.
어미 톰슨가젤이 한 곳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길이 닿은 곳엔 치타가 있고 치타의 입엔 새끼 톰슨가젤이 물려 있다. 치타는 새끼들을 위한 끼니 마련에 성공했고 어미 톰슨가젤은 새끼에게 끼니를 챙겨 줄 기회를 영영 잃어 버렸다. 톰슨가젤이 빠르다 해도 치타에겐 역부족이다. 시간당 최고 속도 80~90㎞에 달한다는 이 동물의 빠르기는 치타, 가지뿔영양, 스프링복에 이어 네 번째다.
세상일이 그 정도에서 그치겠는가. 사냥을 나간 사이 하이에나가 새끼 치타를 물어갔다. 어미 치타 역시 새끼를 핥아줄 기회를 다시는 가질 수 없게 됐다. 어쩌면 먹이사슬은 전방보다는 후방, 핏물보다는 눈물과 밀접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사바나를 무대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다 참척(慘慽)을 당한 지인을 떠올렸다. 두 눈에 우물을 들인 사람이었다. 현실과 꿈의 괴리에서 허우적거렸던 외동아들이라고 했다. 작가에겐 상상력이 필수요건이라고 하나 상상만으론 그릴 수 없는 게 있다. 아니, 어떤 경우 상상은 방해가 될 뿐이다. 극한의 슬픔은 화살처럼 직격한다. 상상이 틈입할 새가 없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10대와 20대의 자살이 증가추세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를 일매지게 기술할 순 없지만 비교열등에서 오는 위축감과 소외감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자식은 갔지만 그이는 여태도 자식을 보내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비극의 근본 원인이 기성세대가 구축한 패러다임이 아닌가 하는.
치타는 치타를 사냥하지 않고 톰슨가젤은 톰슨가젤을 으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타와 톰슨가젤은 불행을 끼친 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동기도 확연하다. 그러나 자진(自盡)한 자식을 둔 어미 아비 들은 대상의 정체를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어찌보면 사회 전체가 대상이다. 그러니 해결방안인들 단순도식화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둔 모든 어미 아비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물을 원래의 자리로 옮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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