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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 음악의 기원은 언제일까? [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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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박물관 복희 소호 부조
동이박물관 복희 소호 부조

K-팝이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가 개인의 상처를 공동체의 위로로 확장시키고, 자본주의 시대의 경쟁과 불안의 시대에 자기 가치의 긍정과 회복 그리고 연대를 노래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현대 세계 속에서 다시금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문화를 지향했던 고대 동이족 음악 문화의 DNA가 현대 K-팝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어서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이족의 음악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우리 동이족의 음악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중국 산동성 남부 임기시(临沂市)에 있는 동이박물관(东夷文化博物馆) 전시실 입구의 왼쪽에는 태호 복희씨와 소호 금천씨가, 오른쪽에는 치우와 순임금이 부조되어 있다. 동이족 네 임금들은 각자 자신들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하나씩 들고 있다. 복희는 팔괘를 들고 있는데, 이는 그가 천지의 위치를 관찰하여 팔괘를 만들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소호 금천씨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으며, 머리에는 깃털을 꽂고 있는데 두 팔과 흘러내린 옷자락과 하의는 새의 깃털 같다. 이는 그가 새를 숭상하는 하늘의 자손임을 보여준 것이다. 오른쪽의 치우는 동이족의 전투성과 금속문화를 상징하는 도끼를 들고 있다. 순임금은 거문고를 들고 현을 뜯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네 명의 부조상은 동이족의 문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동이박물관 치우 순임금 부조
동이박물관 치우 순임금 부조

◆순임금, 덕성을 기른 교육방법으로 음악을 제시하다
이 부조는 동이족의 음악 전통은 순임금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 『사기』 「오제본기」 '제순(帝舜)'조에는 순임금이 기(夔)에게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면서, "강직하되 온화하고, 관대하되 위엄이 있고 꿋꿋하되 사납지 않고 단순하되 오만하게 가르치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신주 사기』, 2020)라고 말하고 있다. 순임금은 이러한 인격과 덕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방법으로 음악을 제시하였다. 그는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고 노래는 말에 가락을 붙여 길게 읊은 것이다. 소리는 가락을 따라야 하고 음률은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팔음(八音)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이치를 빼앗지 않으면 신과 사람들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전한(前漢)시기 공자의 11세손 공안국((孔安國, 서기전 156?~서기전 74?)은 "시는 뜻을 말로 드러내어 마음을 이끄는 것이고 노래는 그 뜻을 읊되 말을 길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팔음에 대해 "조화를 이루어 이치가 어그러지거나 빼앗지 않으며 신과 사람의 화락", 즉 신과 사람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했다. 동이족 순임금의 음악관은 뜻을 말로 드러내어 마음을 이끄는 데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누구를 향하느냐는 점인데, 그 대상은 곧 신이다. 신을 향한 마음은 꾸밈없는 순수해야 하며, 그래야 신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 동이족에게 음악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기르는 핵심 수단이자,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뼈로 만든 피리 (복제품)
뼈로 만든 피리 (복제품)

◆진선진미한 순임금의 음악, 소(韶)
신과 인간, 나아가 만물의 조화를 이루는 동이족의 음악이었기에 기가 경(磬)을 치자 짐승들까지 따라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순임금의 음악을 '소(韶)'라고 하는데, 순임금이 소를 연주하면 봉황이 알아들었다고 전해진다. 또 공자(孔子)는 소음악을 듣고 진선진미(盡善盡美), 즉 극도로 착하고 극도로 아름답다고 크게 높였다. 순임금은 5현금을 타면서 〈남풍가(南風歌)〉를 불렀는데, "오!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백성의 근심을 말끔히 씻어주네./ 남쪽에서 불어오는 때맞춘 바람/ 백성의 재물을 불려주리라!"라는 내용으로 순임금이 작곡한 노래다. 따뜻한 남풍이 불면 만물이 자라나고 백성들도 풍요로워진다고 여겼기에, 순임금은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거문고의 기원과 동이족의 신화적 기억
순임금은 현을 즐겨 탔기 때문에 요임금이 그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을 순에게 시집보내며 특별히 거문고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동이족의 인문·지리서이자 신화집인 『산해경』 「해내경」 에는 "제준(帝俊)이 안룡(晏龍)을 낳았는데 안룡이 건문고와 큰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 신화학자 원가(袁珂)는 이 구절에, '거문고를 처음 만든 인물로는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이 거론되지, 안룡은 대한 전설은 보이지 않는다'는 주석을 달았다. 따라서 이 기록은 안룡이 거문고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즐겼다고 해석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원가는 『산해경』에 제준의 여덟 아들이 처음으로 가무를 행했다는 기록에 대해서 ' 『조선기』에서는 순임금의 여덞 아들이 처음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제준이 순임금이라고 해석했다. 제준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전욱(顓頊)설, 제곡(帝嚳)설, 순임금설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제준이 동방의 천제, 즉 동이족의 천제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이 보여주는 동이족은 음악의 오래된 역사
고대의 음악은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을 신과 만나는 도구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신석기시대 황하 중류의 동이족 앙소문화(서기전 5000~3000)에서는 도령(陶鈴)과 도훈(陶埙)이 출토되었다. 도령은 흙으로 빚은 종 안에 방울을 달아 흔들거나 쳐서 소리를 내고, 도훈은 흙으로 빚어 피리처럼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말한다.

발해만 북쪽의 홍산문화(서기전 4500~3000) 후기의 초모산 유지(서기전 3500년 경)에서는 뼈로 만든 피리가 발굴되었고, 고조선 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서기전2000~1500) 에서는 석경(石磬)이 출토되었다. 〈공무도하가〉는 잘 알려진 고조선의 노래로 가장 오래된 서정 가요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유물들과 가요는 우리 동이족이 매우 이른 시기부터 음악을 중요한 문화요소로 여겼음을 말해준다.

◆북과 제의, 신을 부르는 소리
흙으로 빚어 만든 북, 즉 도고(陶鼓)의 전통은 대문구문화(서기전 4300~2600)에서 이미 보이고 있다. 대문구문화는 중국에서도 동이족 소호금천씨의 문화라고 말하는데, 처음 발굴된 북은 서기전 3500~3200경에 해당한다. 이 도고는 배와 바닥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데, 북 표면을 두드릴 때 공기가 움직이면서 소리가 퍼지면서 서로 어우러지게 하기 위한 기술이다. 또한 도고의 입 주변에는 뾰족한 돌기들이 나 있는데, 이는 북 표면에 가죽을 씌운 뒤 단단히 고정하고 조이기 위한 장치다. 북의 배부분에는 채도가 그려져 있고, 북 표면에는 악어가죽을 씌웠다. 고대 동이족들은 도자기 북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다.

소호의 조카인 전욱도 하늘에게 제사를 지낼 때 북을 사용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고악(古樂)」에는 전욱이 "제위에 오를 때 비룡에게 음악을 만들라고 했다. 비룡은 여덟 방향의 바람소리를 모방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승운이라고 한다. 이 음악을 연주하며 신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이때 악어로 하여금 먼저 선창을 하게 했다"고 전한다. 하늘에 바치는 제사의 시작을 북소리로 알렸다는 뜻이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지금 우리가 신을 만나고자 한다'는 공동체의 선언이었다.

◆동이족, 제의에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
중국 하남성(河南城) 안양(安陽)의 은허후가장(殷墟侯家庄) 대묘에서는 북 표면에 악어가죽을 씌운 흔적이 남아 있는 북이 발견되었다. 『산해경』에는 "뇌택 가운데에 뇌신이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자신의 배를 두드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도자기 북에 씌운 악어가죽을 씌워 두드리며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모습을 전해 주는 것이다.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했다는 표현은 용을 토템으로 여긴 동이족이었을 것이다. 소호금천씨가 새를 숭배해서 그의 후손들이 새의 얼굴로 분장했던 것처럼, 용을 숭배하는 동이족이 용 모습으로 분장했을 것이다.

『여씨춘추』 「고악」에서 "제곡은 하늘의 상제에게 제의를 거행할 때 유수에게 악기를 연주 하게 하고 봉황과 하늘의 꿩에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동이족은 황제의 아들 소호부터 소호의 조카 전욱, 손자인 제곡, 증손자인 요임금, 그리고 황제의 8대손인 순임금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악을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신석기 시대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의 고고학적 악기 유물들, 청동방울, 도기방울, 석경, 나무로 만든 북에 옷칠을 한 칠고(漆鼓), 흙으로 빚어 만든 북 도고(陶鼓), 도훈이 이를 말해준다. 고대 동이족에게 음악은 신을 만나고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우리말에 쓰이는 '신명난다'라는 말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앙소문화박물관 도훈
앙소문화박물관 도훈

◆공동체적 울림의 근원, 동이족 제의 문화
고대의 제사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어울리는 의례였다. 공동체에 어려움이 생기면 신에게 그 해결책을 묻고, 바람과 소망도 함께 빌었다. 이는 개인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나타나는 행위였다. 음악을 곁들인 제의는 공동체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중요한 문화였다.

K-팝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힘은 각 개인들이 고립되어 존재하는 고립의 시대에 '함께 있음'의 감각을 되살렸다는 데 있다.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은 K-팝을 통해 '우리'가 되었고, 그 공동체적 울림의 근원에는 신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했던 동이족 제의 문화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김명옥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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