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이정훈] 잘못된 만남

이정훈 이정훈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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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경축식에서 '3·1혁명'을 내세우고 국민임명식에선 '빛의 임명장'을 받았던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7일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이란 영화를 봤단다. 반일을 내세워 온 그가 일본부터 방문한다니 '그랬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3·1혁명이란 말을 쓴 데선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3·1운동으로 우리는 군주정을 끝내거나 일제를 물리치지 못했다.

독립군 투쟁은 가열찼지만 해방과 독립을 가져오지 못했다. 해방의 기회를 준 것은 일제를 항복시킨 미국이었다. UN을 만든 미국은 반탁 주장을 수용해 남한에서라도 독립정부를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6·25 전쟁을 당했을 땐 UN군을 파병해 도와주었다. 북한이 핵을 만든 지금 우리는 상당한 대응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미국이 만들어온 국제정치부터 탐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국익을 우선하는 실용주의자이다.

미 공군은 작전사령부로 열한 개의 '번호 공군'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 오산에 있는 7공군인데, 7공군에는 스텔스 전투기가 없다. 반면 미·러 정상회담이 열린 알래스카 엘먼도프의 11공군은 F-35는 물론 가장 강력한 스텔스 전투기인 F-22도 갖고 있다. 미 공군은 F-35 편대를 띄워 미국 영공에 들어온 푸틴 전용기를 엄호하고,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곳엔 F-22를 도열시켰다. 그리고 8공군 예하의 B-2 스텔스 폭격기를 불러 F-35와 위력 비행을 하게 했다.

세계 2위의 산유국인 러시아는 원유를 싸게 팔아 마련한 돈으로 우크라이나 전비를 만들고 있다. 미국은 이 원유를 못 사게 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이를 거부한 나라가 인도와 중국, 북한이다. 인도는 냉전 때부터 비동맹 중립노선을 택해왔다. 때문에 중국의 팽창정책인 '일대일로'에 맞서고자 미국과 '쿼드'를 결성하고도, 러시아로부터는 값싸게 원유를 수입했다. 덕분에 인도의 석유화학 공업은 놀라운 경쟁력을 갖췄고 대한민국의 석유화학은 파산 직전으로 몰리게 됐다.

이렇게 번 돈으로 인도는 미국에서 36억 달러의 무기를 사는 '부국강병책'을 펼치겠다고 했는데, 트럼프는 인도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인도의 양다리 걸치기에 따귀를 날린 것. 적잖은 언론은 미·러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 비판하지만, CIA 등의 조언을 받는 트럼프가 이를 몰랐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타협을 예상했다면 B-2를 띄워 위력 비행을 할 이유가 없고, 장소도 만찬은 물론이고 숙박도 하는 최고급 호텔로 준비했을 것이다.

이 회담 후 트럼프가 유럽 정상들에게 '미·러·우 3자회담으로 휴전 문제를 논의하겠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겐 '8월 18일 미국을 방문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모종의 결심을 했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대(對)러시아 정책으로 트럼프의 머리가 복잡해진 시점에 이 대통령이 트럼프를 만나러 가게 됐다는 점이다.

전 세계를 '관세 공포'에 빠뜨렸던 MAGA는 트럼프 정부의 '경제 구호'일 뿐이다. 트럼프는 안보 구호로 'Peace through Strength(힘에 의한 평화)'를 내걸고 있는데, 이를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경제보다는 안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MAGA는 '힘에 의한 평화'를 위한 방편이라는 것도 알아차려야 한다.

관세는 기업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한미 관세협상엔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도 적극 참여해, '미국 조선업을 같이 키우자'는 MASGA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안보는 전적으로 통수권자가 하는 것이라 기업은 개입할 수가 없다.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는 러시아군을 위해 길은 열어줬지만, 참전하진 않았다. 그런데 북한은 2024년 동맹조약을 맺고 참전했다. 덕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잃었던 쿠르스크 지역을 되찾아 사기를 회복했다.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에 정통하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2017년 11월 8일 우리 국회에서 31분간 한 연설이다. B-2로 벙커버스터를 투하해 이란 핵시설을 파괴한 트럼프는 러시아를 구해준 북한을 좋게 볼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북한과의 신뢰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데…. 잘못된 만남에서 당하는 쪽이 어디일지 예측할 수 있는데 직언하는 이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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