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김우석] 광복절 실종: 참담한 이승만·박정희 지우기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김우석 국민대 객원교수

지난주 금요일은 80주년 광복절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주변 베란다를 보니 한두 집만 국기를 게양한 상태였다. 서울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버스를 탔다. 창덕궁, 경복궁, 인사동, 광화문 등을 경유하는 버스였다. 거리를 따라 태극기가 가지런히 걸려있고 시내에는 외국인들이 넘쳐 났다.

고궁 주변에는 한복을 입은 서양 관광객도 적지 않게 보였다. 모두 신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현듯 "역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최고야"하는 '국뽕'이 차올랐다.귀가해서 그 여운을 유지하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갔다.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 팝 헌터스)'이 몇 주 동안 유튜브를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알고리즘의 편향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면 편향성 만은 아닌 것 같다.

OTT (넷플릭스)에서 '케데헌'이 세계 각국 1위를 하더니,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영화 OST가 미국과 영국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있다. 남산, 낙산공원, 북촌 한옥마을 등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성지'들에는 순례객들이 인증샷을 남기려고 북적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의 모티프가 된 '호작도(虎鵲圖)'가 유명세를 타며, 호작도 굿즈(기념품)를 사려고 한국중앙박물관에 오픈 런(open run)이 벌어진다. 단순 관광객 뿐 아니라 한국살이를 체험하려는 외국인도 급증하고 있단다. 그냥 '정신 승리'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충만했던 '국뽕'이 싹 사라진다. 집권당이 '건국절 논란'에 다시 불을 지펴 '편 가르기'를 노골화하고 있단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라고 하는데, 남쪽 반쪽마저도 국민을 갈갈이 찢어 놓는 고약한 행태다. 집안 잔칫상을 뒤엎는 망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긴 이분들은 우리나라 국운이 한창 현창되기 시작할 때도 '헬 조선' 운운하며 스스로 국격을 깎아내린 분들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1931)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재생이 없다"고 쓴 것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격언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 역사를 잊는 것이 더 중한 과오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우리 역사를 지우고 있다. 우리와 자손의 미래를 지우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지우기가 '이승만 지우기'다. 광복절에 광복의 주역이 사라진 것이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기도 한 이승만 대통령이 광복절에 자취를 감췄다. 아니! 망각이고 실종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승만은 분명한 창업공신(創業功臣) 개국 대통령이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었고, 실질적인 제조공신(濟造功臣) 제조 대통령이 되었다.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 당시, 아무 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세계적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신념과 추진력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었고, 대한민국엔 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인적 자원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남다른 추진력 덕이다.

단적인 예다. 1945년 우리나라 문맹률은 78%였는데, 이승만 정부 말인 1960년에는 22%로 줄었다. 8할이 문맹이었는데, 8할이 신문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 예산의 15~20% 수준을 매년 교육에 투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빈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투자였다. 중국은 1950년대 후반 문맹률 70% 이상이었는데, 교육예산 비중은 5% 미만이었다.

인도도 1960년대 초 문맹률이 약 65%였는데, 교육예산은 7~8%정도였다. 보통의 독재자는 통치를 위해 '우민화 정책'에 몰두한다. 그런데 이승만은 독재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 그가 끌어올린 민도로 국민은 민주화를 외쳤고, '4·19 민주항쟁'은 이승만에게 '승자의 저주'가 되었다.

100가구가 넘는 우리 아파트 한 동에 광복절 태극기 게양은 부끄럽게도 다섯 집에 불과했다. 정치가 역사를 지우려 해도,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그런 잘못된 정치를 심판하는 행동이 광복과 내 자식의 미래를 지키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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