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속 60km, 철판 장갑열차…김정은의 '비밀 방중' 다시 시작됐다

2019년과 똑같은 루트에 보안 조치까지…열차 외교 재가동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일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 중국으로 향한 정황이 포착됐다. 약 4년 만에 이뤄지는 방중(訪中) 일정이 열차로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북한 지도부의 '철도 외교'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이날 오전 평양역에서 전용열차에 탑승해 중국 단둥 방향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출발 시각이나 동선에 대해 북한과 중국 당국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김 총비서의 열차는 이미 중국 국경 인근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 철도총공사가 운영하는 공식 예매시스템 '12306'에서는 1일과 2일, 랴오닝성 단둥에서 베이징 방면으로 향하는 열차 운행이 모두 잠정 중단됐다. 평소 하루에도 수차례 운영되던 해당 노선의 중단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김 총비서의 이동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단둥에서 베이징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1,000km에 달한다. 김 총비서가 사용하는 전용열차 '태양호'의 운행 속도가 시속 50~60km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구간을 이동하는 데만 최소 16시간에서 최대 20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열차는 전날 밤이나 이날 새벽, 평양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총비서가 탑승한 열차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평양을 출발해 신의주, 단둥, 선양, 톈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하는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해당 노선은 2019년 1월 김 총비서가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루트로, 이미 안전성과 실용성이 검증된 구간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가 이동 수단으로 전용열차를 선택한 것은 기존의 안정된 경로에 대한 신뢰, 그리고 상징성과 안전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수해와 폭우 등 자연재해로 인해 노선 상태가 변수일 수 있지만, 과거에도 유사한 여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열차 이동에는 보안 유지와 사전 준비가 필수다. 실제로 김 총비서의 전용열차는 '움직이는 요새'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높은 수준의 방호 기능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객차 외벽은 모두 두꺼운 철판으로 덮여 있으며, 창문과 바닥 역시 폭발물에 대한 내성을 갖춘 특수 설계가 적용돼 있다.

열차 내부는 회의와 집무가 가능한 별도 공간, 전용 침실, 식당차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외부와의 통신을 위한 첨단 장비도 탑재돼 있다. 김 총비서의 전용 차량도 열차에 실을 수 있어 도착 후 곧바로 현지에서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북한 지도부의 열차 외교는 김일성·김정일 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생전 중국과 러시아 등을 방문할 때 전용열차를 이용했으며, 김정은 총비서도 이를 계승하는 형식으로 철도 외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번 방중 일정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사 당일인 3일에 앞서 2일에는 주요 외빈들이 베이징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김 총비서가 1일 열차로 평양을 출발해 2일 베이징에 도착하는 일정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김 총비서가 이번 방중에서 열차를 택한 것은 단순한 교통 수단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민 연구위원은 "전용열차 이동은 선대 지도자들이 사용한 역사적 경로를 따라간다는 상징성도 갖는다"며 "기록영화나 내부 선전물 등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자주 사용되는 만큼, 내부 결속 차원의 고려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비서는 2018년 이후 모두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첫 방중이었던 2018년 3월에는 전용열차를 이용했고, 같은 해 5월과 6월에는 각각 전용기를 통해 베이징과 다롄을 방문했다. 이후 2019년 1월에는 다시 전용열차를 타고 베이징에 들어갔다.

한편, 김 총비서가 한때 자주 이용했던 전용기 '참매 1호'는 2018년 이후로 공식 석상에서 목격되지 않았다. '참매 1호'는 구(舊) 소련이 제작한 일류신 IL-62M 기종을 개조한 항공기로, 노후 기종이라는 점에서 기체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북한 당국은 과거 김 총비서의 열차 이동 당시에도 철도 노선 주변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인근 지역 열차 운행을 일시 중단하는 등 고도의 보안 조치를 취해왔다. 이번에도 중국 측과 사전 조율을 통해 단둥~베이징 구간 운행 중단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며, 향후 김 총비서의 동선에 따라 일부 중국 내 교통 통제가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당국은 전승절 행사 참석자 명단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도 김 총비서의 방중 여부나 일정과 관련해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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